매직 패스 관련된 인터넷 글을 본 게 한참 전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갑자기 "매직 패스 논란" 어쩌고 하면서 시끌시끌했다.
나는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배가 불렀구만.' 하고 그냥 개소리로 치부했다.
나 어릴 때는 부모님하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복이네 하는 꼰대같은 소리를 하면서.
아무튼 그렇게 지나간 일이 왜 갑자기 논란인 거지, 또 기자가?? 하면서 봤더니
정재승 씨가 이걸 가지고 TV 프로그램에서 '굉장히 멋들어진' 소리를 했나 보다.
알쓸신잡에서 '이순신의 숨결' 하나 말고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사람.
자기 분야에서 영역을 이룬 건 대단하고, 존경할 만하다.
그런데 왜 자기 분야에서 이룩한 권위를 가지고 다른 분야에서도 그대로 발휘를 하려고 선을 넘어대는 건지...
다른 분야에서도 자기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게 너무 적나라해서 솔직히 별로인 캐릭터였다.
대중친화적인 스탠스로 그걸 감추려는 것도 너무 티가 났고.
아무튼 정재승 씨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여기서 다룰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쯤에서 STOP!
나는 이 매직패스 논란을 보면서 코웃음이 나왔다.
이 문제를 시간과 돈을 저울질해서 정당하게 거래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새치기한다'는 쪽으로 접근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베트남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랑 띠엔도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면서, 돈과 시간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했다.
우리 둘 다 돈이 없는 사람이라서 사실상 돈을 지키고 시간을 쓰는 쪽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진짜 중요한 경우는 조금 투자를 해서 시간과 돈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트남은 '시간이냐 돈이냐'의 양자 거래로만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니다.
베트남 사회가 '돈'의 반대편 저울추에 올린 것은 '시간'에다가 '정상적인 상황'을 같이 올려두고 있다.
이리저리 찾은 정보와 정확히 문서화된 근거 이런 거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매직패스니 뭐니 하는 것은 결과에 도달하는 건 같거나 유사한데, 돈을 써서 시간을 단축시키느냐, 시간을 들여서 돈을 지키느냐의 차이인 건데,
베트남에서는 여러 경우의 수로 나뉜다.
- 돈을 안 쓰고, 엄청나게 시간을 쏟아부어서 겨우겨우 결과물을 얻어내거나
- 돈을 안 쓰고, 엄청나게 시간을 쏟아부었으나 얻어낸 결과물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 다시 시작하거나
- 돈을 안 쓰고, 엄청나게 시간을 쏟아부었으나 결과물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거나
- 돈을 엄청나게 쓰고, 내가 원하는 형태의 결과물을 제시간에 맞춰서 얻어내거나
- 돈을 엄청나게 쓰고도 서비스 제공자의 꼬장과 불만 등을 받아내다가 겨우겨우 결과물을 얻어내거나
- 돈을 엄청나게 썼는데 ㅈ같은 결과물이 나와서 따졌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어쩌라고'거나
- 돈을 엄청나게 썼는데, 뭔가 삐끗하는 바람에 약점이 잡혀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거나
누구를 상대하느냐, 어떤 일이냐 등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나뉘지만 요약을 하자면 이 정도이다.
돈을 쓰면 무조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구조여야 정상인데, 돈을 써도 상대방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안 할 거라는 불신 때문에 쓰는 데 주저함이 생긴다는 점이 제일 ㅈ같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우고 겪었던 '정상적'인 것들이
시간이냐 돈이냐, 어느 것을 선택할래?를 재는 저울 위에 같이 올라간다는 게 처음에는 진짜 엿같았다. 심지어 '시간'하고 거의 한 세트로 묶여가지고, 돈을 지키는 걸 선택하면 시간도 잃고 정상적인 것도 잃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제는 '베트남이란 나라가 원래 그렇지 뭐~'하게 되었다.
1.
공적인 서류를 뗄 때 일단 짜증이 정말 많이 난다.
우리 부부가 혼인신고를 한 날짜 때문에, 곧 태어날 꼬미의 한국 측 출생신고 때 아내의 '과거 미혼 증명'이 필요해진 상황.
우리나라의 법률 때문에 서류가 반드시 필요한데, 장모님은 벌써부터 고민이다.
한국 쪽 법률 때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도 '결혼을 했는데 왜 미혼증명 같은 서류가 필요하냐, 어디 가서 사기치려고 하는 거 아니냐' 어쩌고 하면서 안 해주려고 할 게 뻔하고, 그 서류를 떼려면 집에 찾아가서 또 얼마를 줘야 할 지...
2.
혼인신고 때 필요한 서류 중에 xã의 인민위원회에서 장인어른이 떼오셔야 했던 서류가 있었다.
대개는 정상적인 업무 시간에 인민위원회에 가서 서류를 접수하고 돌아온 다음,
퇴근 시간 이후에 인민위원회장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돈을 쥐어줘야 서류를 얻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아주 엿 같았던 건... 돈을 줬으면 일이라도 똑바로 해야지, 서류 내용을 계속 틀려가지고, huyện의 인민위원회에서 해당 서류가 양식이 잘못되어 받을 수 없다고 3번을 빠꾸 먹였다는 것이다.
3.
장모님은 내 아내를 포함해 총 4명의 딸을 낳으셨다.
그런데 손아랫처제 같은 경우는 집에서 출산을 하셨다는데, 그 전에 huyện의 병원에서 내 아내와 처형을 낳을 때 분만실 가기 전에 의사나 간호사에게 돈을 쥐어주셔야 했다고 한다. 안 그러면 신경도 안 쓴다고.
그래서 지금 출산을 준비하는 아내와 나는 병원비용 계산을 '공식적인 병원 비용 + 의료진에게 쥐어줘야 하는 돈'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의료진에게 줘야할 돈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도 않고, 쥐어준다고 VVIP 모시든 하는 게 아니라 그제야 '자기 할일'을 하는 정도라는 점에 매우 짜증이 나있는 상태다.
솔직히 그래서 냐짱에서 출산준비 하고 싶었던 건데... 차라리 시설이라도 훨씬 낳은 이곳에서...
4.
내가 베트남 첫 번째로 방문을 하기 전,
한국에서 준비를 하면서 이미 '베트남은 이런 나라구나'라는 걸 체험하게 되었다.
베트남 여행을 준비해보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것이다.
바로, "패스트트랙".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베트남 각지의 국제공항 "빠른입국서비스"라면서 상품을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링크 같은 것이 대표적.
내가 듣기로는 방콕인가에서도 이런 게 있다던데...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베트남은 국제공항 전부에 이런 게 있다고 봐도 된다.
매직패스가 논란이 된 이유, '돈으로 새치기를 한다'라는 말은
"어떤 정상적인 상황을 돈이라는 재물을 통해서 깨뜨려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다.
새치기라는 단어 자체가 그런 것 아닌가. 정상적으로 서 있는 줄을, 비정상적으로 깨고 들어가는 것.
하지만 '돈으로 새치기를 한다'고 말하려면 베트남에서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만약 이게 정상적인, 정당한 서비스라면, 출입국사무소가 공식적으로 판매, 제공을 해야지.
현장에서도 당연히 안내를 받고 구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 맞고.
온갖 대행사와 여행사가 붙어가지고 가격도 서로서로 다르게, 서비스의 구체적인 내용들도 조금씩 다르게 해서 판매를 하지만 공식 판매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공고되어 있지도 않다...
이런 말들을 구구절절 논하고 있는 게 웃긴 듯.
아래는 내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일기'를 시작했던 포스팅.
지금 다시 읽어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게 많다. 확실히 처음 들어올 때와 지금의 나는 베트남에 대한 정보와 지식, 생각이 많이 바뀌었네.
이 포스팅을 쓸 때는 내가 랜딩비자 2시간 대기를 했고, 어쩌고 이런 이야기만 했었는데 그때도 참 본 게 많았다.
일단 나도 랜딩비자는 대행사를 통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었으니까 대행사를 거치긴 했다.
초청장은 오히려 주한베트남대사관을 거치면 더 엿같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대행사 사이트에서 결제를 할 떄, "추가" 부분에 패스트트랙이 있었다.
가격이 너무 세가지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하고 패스했다. (내 기억으로 그 사이트에서 언급한 패스트트랙 가격이 10만원인가 그랬는데...)
아무튼 나는 랜딩비자 발급하는 곳에 꽤 일찍 도착해서 서류를 냈음에도 2시간 이상을 기다렸고, 입국 심사대를 거의 마지막에 통과한 승객이 되었다.
랜딩비자 대기할 때 찍었던 사진을 오랜만에 봤는데, 왼쪽에 각종 대행사 직원들이 모여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끔히 차려입은 직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매자를 기다린 다음,
구매자로부터 서류를 받아가지고 스탬프를 찍는 직원들에게 넘겨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에 많은 것들이 있다.
대행사들끼리 서로 경쟁도 하는지, '우리 거 먼저 해라' 이런 실랑이도 좀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대행사 직원이 붙어서 분명히 패스트트랙을 하고 있는 건데도 엄청 늦길래, 속으로 '저 대행사랑 출입국사무소랑 사이가 안 좋나보다'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ㅎㅎ
한국에서 판매하는 사이트들을 보면 대개 비슷하던데,
베트남 쪽의 한 대행사 사이트를 보니까 이런 식으로도 판매를 하더라.
비자 스탬핑 데스크만 빠르게 넘기느냐, 아니면 입국수속 전반을 빠르게 하느냐.
아래에 VVIP 패스트트랙도 있는데, 그 패키지 같은 경우는 짐도 미리 다 찾아주는 걸로 되어 있었다.
엄청 웃긴 건, '패스트트랙'이라고 하지만 이름값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
판매처 몇 곳의 안내 부분에서 재밌는 부분을 추출해왔다.
패스트트랙이지만 조금 긴 줄을 서야할 수도 있고, 공항직원이 늦게 출근하면 늦게 가는 거야~
이게 정상적인 서비스면 직원 휴무랑, 내부 감사가 중단의 이유가 되는 게 맞나 싶은데.
귀빈 입국은 원래 다른 영역의 문제니까 그렇다고 쳐도.
특정 직원이 아니면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걸 증빙이라도 하는 건지,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이 한 둘이 아닌데 왜 '직원의 휴무'로 서비스가 중단을......?
내부 감사는 뭔... 감사가 있을 때는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
아, 이름은 패스트트랙이지만 패스트하지 않아도 패스트트랙인 겁니다.
종종 이걸 이용한 사람들의 후기에는 종종 '피켓 들고 있던 사람이 없었다, 전화했는데 늦게 받고 소통도 안 됐다, 일반심사한 사람보다 늦게 갔다' 하는 내용들이 보인다. 이 문제는 한 3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조금만 살펴보아도 서비스 자체가 굉장히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안 쓰게 될 경우, 복불복으로 굉장히 엿같고 불편한 '비정상적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만약 본인이 운수가 안 좋은 사람이다, 재수가 더럽게 없기로 유명하다 그러면 베트남 입국으로 그 운을 시험해보시길 추천드린다.
2020년에 처음 베트남에 올 준비를 할 때만 해도,
'공식적인 정보대로 세관 문제 생길 만한 것들 아무것도 안 들고 왔는데, 갑자기 뭔 물품을 가지고 잡았다' 이런 소리부터 시작해서, 여권 검사를 하면서 온갖 헛소리로 심사를 지연해서 오래 붙잡혀 있었다는 등의 다양한 사례들을 꽤 공유받았었다.
원래 문제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는 걸 그 절차 자체를 어그러뜨려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게 베트남이다.
전에 공항 미팅을 하려고 입국장에 있는데, 어떤 분 한 분이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들어보니까 사전에 주의사항 같은 거 읽어보고 체크해서 짐을 꾸렸는데, 갑자기 따님 캐리어가 잡혀가지고 못나오고 있다고...
내가 어떻게 도와드릴 방법은 없었다.
아무튼 코로나가 한창 휩쓸고 간 다음에도 대놓고 정상적인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정신 못차리고 대놓고 했다가 걸린 사례가 등장했다.
올해 1월 기사다. 싱가포르 여행객 한 사람이, 출입국 심사 직원에게 대놓고 '팁'을 요구받았다는 게 공유되면서 난리가 났었다.
능숙도가 많이 떨어졌거나, 경험이 일천한 직원인 듯.
베트남 넷상의 여론도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이게 외국인에 의해 공론화되니까 부정적으로 흐른 것일 뿐.
심지어 몇몇 댓글들에서는 "Tip"이라는 종이를 건네줄 때 찍었어야지 종이 따로, 사람 따로 찍는 건 위조한 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가기도 했지.
매번 일이 한 번 터지면 부패근절이니 뭐니 하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
이런 문제 생기고 난 다음?
언더머니 요구할 일이 생기면 핸드폰부터 검사하던데?
그 공안 놈... 책상 아래쪽으로 아내한테 돈 건네받기 전에 내 거랑 아내 거 핸드폰부터 가져가서 갤러리랑 다 뒤져보던 지독한 새끼...
나는 경제학의 어려운 말들을 잘 몰라서,
이 논란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들은 할 게 없지만
그저 시간이냐 돈이냐의 선택지인 거지 정상적인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은 같다는 게 나의 생각.
베트남처럼 돈을 더 안 내면 정상적인 걸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구조도 아닌데 이게 논란거리가 되나 싶다가도,
'나 베트남 사람 다 됐나?' 싶기도 하고.
'느낌, 떠오르는 단상들 > 티스토리 오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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