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내 전공 학문에 심취(?)해 있을 때는 근본주의적 경향이 좀 있었다. 아니, 거의 탈레반에 가까운...
하지만 내가 먹고 살려고 다른 길로 방향을 틀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다.
내가 전공과 멀어지고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한 이래로 접한 것들 중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인 영역이 있다면, 아마 '베트남어 발음'이 아닐까 한다.
베트남어 학습 전반이 아니라 '발음'.
특히나 베트남어를 좀 아는 한국인, 한국인 베트남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오늘도 가만히 카페에 앉아가지고, '와 올해는 왜 이렇게 덥냐'를 남발하면서 폰을 만지작거리던 나의 눈에 들어온 무언가.
해당 오픈채팅방에 올린 내용 안 가릴 것이다.
어차피 익명이고, 본인도 '공익적 저격'을 위해서 장문의 글을 남겼으니까.
그대로 퍼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으실 거고,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실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뜬금없이, 여러 베트남어 강사(한국인)들을 평가내리면서,
본인이 지적을 했지만 카르텔의 압박과 그 수하(?)들의 비방 속에 쫓겨나고 공격당하는 위대한 투사임을 어필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처음에 율쌤의 챗방에서 쫓겨났다고 하길래 율쌤한테 물어볼까 고민을 했다.
송유리 선생님하고는 관통사 면접대비반에서 알게 된 이래로 간혹 개인적인 연락들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내 성격이 개인적으로 살갑게 연락하는 일하고는 안 맞다 보니,
연락을 주고 받은 지 오래되서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긴 좀 그랬다.
궁금하다고 괜히 이걸 물어보는 것도 실례긴 하다.
아무튼 이걸 보면서 엄청 대단하신 분인갑네. 하는 생각도 좀 들었고고,
발음 지적은 좋은데 차량 결함이 어쩌고 하면서 아예 비교가 성립이 안 되는 분야를 가져와서 정당성을 만들어 나가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저 분처럼 베트남어 수준이 높았다면, 당장 동영상을 시리즈물로 찍었을 거다.
"유명 베트남어 강사들도 틀리는 베트남어 발음들!", "이런 베트남어 발음 강의를 듣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그만 보라고 하겠습니다!" 뭐 이런 느낌의 자극적인 제목과 자극적인 썸네일 만들어가지고.
본인이 지적하고 싶은 발음들 전부 모아서 '이게 진짜다'하는 영상들 올리면, 베트남어 학습자들 조회수 확 끌어모을 수도 있고, 본인이 원하는 영향력도 만들어갈 수 있을텐데 왜 굳이 이렇게 여기저기 힘들게 투쟁을 하시는 건지.
발음과 관련된 개인적인 서사 같은 게 있나?
내 아내가 베트남인이긴 하지만, 내가 베트남어를 너무 못해서,
솔직히 다른 사람의 베트남어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할 위치는 아니긴 하다.
하지만 저 분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대충 끄적끄적 해놓으려고 블로그에 들어왔다.
이분이 계속 오픈톡방에서 주장하는 바는 굉장히 어폐가 많지만,
이런 거를 건드리면 나도 카르텔과 그의 추종자 등으로 탄압하는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 이분의 주장에 대한 이야기는 패스해야겠다.
- 베트남어는 발음이 진짜 중요한 것은 맞음. 발음이 다 하는 언어. 그런데 발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발음이 잘못됨으로 인해 의미 전달이 아예 안 되거나, 완전히 다른 의미를 전달해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서 그런 것.
- 한국어를 가르치는 베트남인 강사들 중에도 한국어 발음이 별로인 분들이 계심. 그런데 그 분들이 발음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고, 간혹 혀가 꼬인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가서 ㅈㄹ을 하진 않음. 오히려 발음을 한국인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분들한테 '와 진짜 잘한다' 같은 찬사를 보낼 뿐.
- 한국인에게 베트남어가 '발음'에 문제가 있는 언어이듯, 베트남인에게도 베트남어가 그렇다. 문법보다 특정 자모음의 발음을 자연스럽게 하는 방법에 관련된 영상들이 더 인기가 많았음.
- 처음에는 나도 베트남어의 '발음 그 자체'에 집착을 했는데, 약간은 생각이 바뀌었음.
발음 부분은 소통이 가능한 영역까지 올라오면 발음 자체에 공을 들이는 시간보다는 베트남스러운 표현이나 베트남의 문화가 담긴 표현 등에 더 집중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한국어의 감성을 가지고 그냥 베트남어로 '직역'을 한 표현들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대부분 이해는 됨.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색하게 느꼈음. 베트남 사람들은 그냥 '외국인인데도 베트남어를 조금 하네?' 정도로 여기는 것. - 모든 언어는 '소통'이 1차적인 목표. 내 의사가 상대방에게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그러면 '소통'이라는 1차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나머지는 부차적인 영역. 언어학을 하겠다거나, 언어적인 새로운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닌 이상.
- 발음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함.
발음으로 학습자들을 빡세게 갈구는 이유는, 그 발음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영역에 있는 학습자가 많아서임.
베트남에 오래 살면서 '실전 베트남어'를 터득한 분들 중에는 간혹 자기가 정말 베트남어를 잘한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대화 상대가 그 사람과 오랫동안 교류를 해서 그 분의 '한베어' 발음과 문장 구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눈치껏 맞추는 거였음.
그 분이 처음 만나는 베트남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데, 이 베트남 사람이 자기 '베트남어'를 못 알아 들으니까, 도리어 이 베트남 사람을 멍청이 취급을 해댔음. 나중에 이 베트남 사람은 '저 사람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음. - 내가 제일 처음 모교의 언어교육원에서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당시 원어민 선생님은 거슬리는 발음이 있으면 수업 내도록 교정될 때까지 발음을 시켰음. 나도 딱 한 가지 발음이 지적을 당했는데, 그게 dấu ngã.
그런데 지금 기준으로 돌이켜보면 그때 했던 내 발음은 틀린 게 꽤 많음. 또한 그때를 기준으로 지금 내가 하는 베트남어를 생각해보면 엉망이 된 발음도 엄청 많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아내가 있어서 그런가 봄. - 갑자기 떠오른 웃겼던 경험.
나한테 한국어 발음을 지적했던 어떤 베트남인이 있었음. 정작 본인은 굉장히 어색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했었는데. - 아무튼, 발음은 원어민들에게 있어서도 좀 복잡한 문제라는 생각.
베트남인들에게도 이제 막 모국어를 배워나가는 어린 학생들의 발음을 잡는 문제가 중요함.
왜냐하면 발음을 틀리게 하면 쓰는 걸 틀린 발음에 따라서 틀리게 쓰고, 그게 잘못된 습관으로 굳어지기 때문. - 예를 들어 Hằng ngày의 경우. 처음 베트남어 배울 때 ă와 a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배웠음.
근데 지금까지 그걸 뚜렷하게 구분해서 발음하는 원어민들은 거의 없었음.
원어민 사이에서도 그러다보니 hàng ngày로 쓰는 경우가 많아짐. 그러나 이건 명백하게 'ă와 a의 발음을 구분하지 못해서 틀리게' 쓰기 시작한 단어. 그러나 원어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현상으로 굳어지다보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hàng ngày'로 쓰기도 한다는 식의 설명이 탄생.
이렇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베트남어는 '원칙은 거의 없고 예외만 무지하게 많이 존재하는 언어'가 됨. - 목소리 톤이 튀어서 성조가 자주 튀는 원어민도 있고, 구강 구조 때문에 발음이 뭉개지는 원어민도 있음.
하지만 원어민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은 거의 문제가 생기지 않음. 그냥 내가 몰라서 못 알아듣고 있는 것일 뿐.
해당 언어의 지적인 백그라운드가 넓으면 발음이 '틀려져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음. 기본적으로 맥락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굳이 지적하는 사람들도 없었음. 무슨 츳코미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같은 외국인이 베트남어를 한답시고 하는데, 아예 발음이 틀려서 문맥 그 자체를 박살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 법칙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장인어른 장모님은 Quảng Nam 출신이셔서 그런지 발음이 다름.
중부 지방 몇몇 지역의 경우는 아예 통역사가 있어야 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똑같은 문자로 써놓고도 발음이 아예 달라지는 정도.
나는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예컨대 làm 같은 단어를 '람'과 같은 식으로 발음하시는 걸 아예 들어 본 적이 없음. 그렇다고 쓰기를 다르게 쓰느냐? 아님. 쓰는 건 làm으로 쓰시지만, 발음을 다르게 할 뿐. (물론 모음만 달라짐). - 내 아내도 종종 그렇지만, 내가 왕십리에서 FLEX반을 수강중에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모교 언어교육원을 추가로 다닐 때의 원어민 선생님도... a와 â를 구분 못하는 경우가 있었음.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분명히 문맥상 dậy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dạy라고 발음하고, 심지어 쓰기도 그렇게 쓰는 경우. 나는 처음에는 착각을 해서 쓸 때만 잘못 쓰는 경우라고 생각을 했는데 명백하게 그렇게 발음을 했음.
- 한국에서 베트남어를 공부할 때는 몇몇 사람만 그런다고 생각을 했었음. 그런데 베트남 남부에서 이 지역 저 지역 떠돌면서 서부, 남부, 중남부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까 알게 되었음. a, â를 혼용해서 발음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걸.
명백하게 틀린 건데 이렇게 쓰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았음. 진짜 문맥이라는 게 없어서 '내가 가르쳤어'라고 말한 건지, '나 일어났어'라고 말하는 건지가 아예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아니면 지적거리도 아님.
심지어 아예 현상으로 굳어지면 사전에 'phương ngữ(방언)' 처리를 해서 등재해버림. - 언어교육원에서 처음 베트남어를 공부할 때, 나에게 dấu ngã를 죽어라고 지적하시던 선생님은 북부 사람이셨음. 그런데 그 분이 알파벳을 하나하나 가르치실 때는 ưu를 학습자들이 아는 '으우'에 가까운 발음으로 하셨는데, 이상하게 단어를 읽을 때면 예외없이 '이우'로 발음을 하셨음. 예컨대 bưu điện은 무조건 [비우 디엔]이었음.
- 다른 학습자 한 분이 그 발음을 물어보셨는데, 본인은 지적받기 전까지 인지를 못하셨던 것 같음. 본인의 귀에는 그게 같은 음가로 들렸나 봄.
설명을 들어보면, 어렸을 때부터 주변 분들이 다 '이우'로 발음을 하는 지역에서 커오셨고, 다들 그렇게 발음했기 때문에 그게 정착이 되셨던 것.
계속 단어를 그렇게 읽으시다보니, 나도 그 영향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나는 ưu를 '으우'가 아닌 '이우'로 발음함. - 그런데 내가 인사대 어학당에서 공부할 때도 그렇고, 추가로 과외를 받을 때 과외 선생도 그렇고, 아무도 내가 ưu 발음을 약간 다르게 하는 걸 교정하라고 말하지 않았음. 그냥 그렇게 발음하는 건 어디서 배웠냐 정도만 묻고, 그 다음부터 내가 그렇게 발음하든 말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음.
- 자음은 말할 것도 없음. 베트남 사람들한테도 심각하게 이야기되는 발음 현상들이 있음.
l과 n을 착각하는 건 아예 하나의 언어적 현상으로 자리잡혀서 용어가 따로 존재함.
ch/tr는 너무 보편화되어서 한국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칠 때는 '지역마다 다르다' 운운하며 넘김(베트남어 원어민 선생님 역시도). - n과 ng가 단어의 끝에 자리할 때의 발음은 꽤 많은 원어민들이 구분을 못해서 쓸 때 ng로 써야되는 게 n으로 쓰인 경우도 정말 많이 봄.
- 코미디빅리그에서 개그맨 최지용 님이 이진호 님하고 했던 어떤 코너가 갑자기 떠올랐음. 최지용 님이 국문과 교수인가 뭐 그런 캐릭터로 한국어 발음 지적하는 개그를 했었는데. 장단음이나 받침, 모음 이런 거의 정확한 발음 가지고 지적하고 제대로 읽게하는 식의 개그를.
- 자국민들 사이에서 한국어 발음도 개그의 소재가 될 정도로 원칙하고 실제가 유리된 경우가 많음.
우리의 모국어도 이런데...
외국인의 입장에 서서, 외국어인 베트남어에 대해서 뭐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으면 본인이 특정 목적으로 가지고 컨텐츠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음. 그리고 모든 판단은 학습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모든 학습자들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는 사람들임. 초심자에게는 독이다? 초심의 단계를 통과해서 그 언어에 눈이 떠지게 되면 알아서 판단하고 수정함.
초급 학습자들을 어리석은 사람 취급하고, 본인이 직접 뭔가를 보여주면 되는 문제를 가지고 남을 공격하는 것으로 끝을 내니까 비방과 특정인에 대한 공격, 비하로 들리는 게 아닐까? - 진심으로 누군가의 언어 학습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걸 걱정하고, 그렇게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걸 구제해주고 싶으면 본인의 컨텐츠로 증명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 본인은 시간이 없고 바빠서 컨텐츠를 따로 만들기는 역부족이지만,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뒷담을 하고, 남을 평가하고 하는 건 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
- 누군가 혹은 어떤 것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자유고, 딱히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님. 그러나 '외국어 학습'이라는 분야는 우리가 특히 비평을 자주 하는 '예술' 분야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영역.
- 원리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준점이라는 게 분명하게 존재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것과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 경향은 전혀 다른 문제. - 더 많이 알고,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가는 분들일수록 자기 전문 분야를 더 조심스럽게 대하시는지 깊이 생각하고 깨닫게 된 하루였음.
내 베트남어는 아직도 최하~하 수준이기는 하지만,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길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선생님과 많은 컨텐츠들을 접했다. 내가 대충 이 정도 수준의 베트남어를 하면서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게 된 데에는 나의 학습과 판단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남기고 싶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내가 한문공부할 때 가지게 되었던 근본주의적 경향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언어 영역은 각자의 경험과 지식이 녹아서 형성이 되는 영역이다보니 그 자체를 평가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학습 태도나 학습에 대한 자세, 그리고 학습의 의도를 평가하는 거면 몰라도.
이렇게 한 번 떠오르는 걸 주절거려봤다.
참 오픈톡방은 나의 언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되는 게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하다는 점에서 좋은 듯.
'느낌, 떠오르는 단상들 > 티스토리 오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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