豫, 利建侯, 行師.
豫之言, 暇也, 暇以樂之謂豫. 建侯所以豫, 豫所以行師也. 故曰‘利建侯行師.’ 有民而不以分人, 雖欲豫, 可得乎? 子重問晉國之勇, 欒鍼曰, “好以暇.” 是故惟暇者爲能師.
‘예’라는 말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 여유를 가지고서 그것을 즐기는 것을 일러 예라고 이른다. 제후를 세웠기 때문에 여유롭고, 여유롭기 때문에 군대를 출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후를 세워 군대를 출동함이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백성이 있더라도 타인과 나누지 않는다면 비록 여유롭고자 하더라도 가능하겠는가? (초나라) 공자 重이 晉나라가 용감한 이유를 묻자 난겸(欒鍼)이 말하였다. “여유가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떄문에 오직 여유 있는 자만이 군대를 잘 쓸 수 있다.
* 난겸의 말은 춘추좌전 성공 16년조 참고.
彖曰, “豫, 剛應而誌行. 順以動豫. 豫順以動, 故天地如之.
言天地亦以順動也.
천지 역시 순응하면서 움직인다는 말이다.
而況建侯行師乎? 天地以順動, 故日月不過, 而四時不忒. 聖人以順動, 則刑罰清而民服.
上以順動, 則凡入於刑罰者, 皆民之過也.
윗사람이 순응하면서 움직인다면, 무릇 형벌을 받는 것은 모두 백성의 잘못이다.
豫之時義, 大矣哉!”
卦未有非時者也. 時未有無義, 亦未有無用者也. 茍當其時有義有用, 焉往而不爲大? 故曰時義, 又曰時用, 又直曰時者, 皆適遇其及之而已, 從而爲之說則過矣. 如必求其說, 則凡不言此者, 皆當求所以不言之故, 無乃不勝異說而厭棄之歟? 盍取而觀之, 因其言天地, 以及聖人王公, 則多有是言. 因其所言者大而後, 及此者, 則其言之勢也是說也. 且非獨此見, 天地之情者四, 利見大人者五, 其余同者, 不可勝數也. 又可盡以爲異於他卦, 而曲爲之說歟.
괘는 때가 아닌 적이 없었다. 때는 의미가 없는 경우가 없었고, 쓰임새가 없는 적이 없었다. 참으로 그 시기에 마땅한 의미와 쓰임새가 있다면 어찌 나아가 위대해지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시의라 말하고 시용이라 말하며 시라고 곧바로 말하는 것은 모두가 그런 상황에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뿐이니, 따라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설명을 한다면 지나친 것이다. 만약 기필코 그 설명을 구한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모두 말하지 않은 까닭을 구해야만 하므로 異說이 많아져 싫증을 내고 버리게 되지 않겠는가? 모아서 살펴보면 천지에서 성인, 왕공에 이르기까지 그 때와 관련된 말들이 많이 있다. 그 언급된 자가 위대해진 후에 이러한 시기에 도달한다면 그것을 말하는 형세가 이렇다는 뜻이다. 또한 홀로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어서 천지의 실정을 말한 괘가 4개 있고,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는 것을 말한 괘가 5개가 있으며, 나머지 같은 말은 이루 셀 수 없다. 다시 다른 괘와 다르다고 생각하여 왜곡하는 말은 끝낼 만하지 않겠는가?
象曰, “雷出地奮豫. 先王以作樂崇德, 殷薦之上帝, 以配祖考.” 初六, 鳴豫. 凶. 象曰, “初六鳴豫, 誌窮兇也.”
所以爲豫者四也, 而初和之, 故曰鳴. 已無以致樂而恃其配, 以爲樂志不遠矣. 因人之樂者, 人樂亦樂, 人憂亦憂, 志在因人而已. 所因者窮, 不得不凶.
예가 되는 까닭은 사효 때문인데, 초효가 이에 화답하므로 鳴이라고 말한 것이다. (초효는) 즐거움을 가져올 만한 것이 없기에 그 짝에 의지하면서 뜻이 멀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자는 그가 기뻐하면 자신 또한 기쁘고, 그가 슬퍼하면 자신 또한 슬프니, 뜻이 다른 사람에 의지해 있다. 원인이 되는 자가 궁하면 흉하지 않을 수 있다.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吉. 象曰, “不終日貞吉, 以中正也.”
以陰居陰, 而處二陰之間, 晦之極, 靜之至也. 以晦觀明, 以靜觀動, 則凡吉兇禍福之至, 如長短黑白, 陳乎吾前. 是以動靜如此之果也. 介於石果於靜也, 不終日果於動也. 是故孔子以爲知幾也.
음이면서 음의 자리에 머물고 두 음 사이에 처했으니, 어둠의 극치이고, 고요함의 지극함이다. 어둠으로써 밝음을 관찰하고, 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관찰하면 길흉화복의 다가옴이 장단흑백과 같이 명확히 내 앞에 펼쳐진다. 이런 까닭에 움직임과 고요함도 이와 같은 결과이다. 혼자서 돌 같이 있는 것은 고요한 결과이고, 하루를 넘기지 않는 것은 움직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공자꼐서는 이것을 幾微를 안다고 여긴 것이다.
六三, 盱豫. 悔遲有悔. 象曰, “盱豫有悔, 位不當也.”
以陽居陽, 猶力人之馭健馬也, 有以制之. 夫三非六之所能馭也. 乘非其任而聽其所之, 若是者, 神亂於中, 而目盱於外矣. 據靜以觀物者, 見物之正, 六二是也. 乘動以逐物者, 見物之似, 六三是也. 物之似福者誘之, 似禍者劫之, 我且睢盱而赴之. 既而非也, 則後雖有誠然者, 莫敢赴之矣. 故始失之疾, 而其終未嘗不以遲爲悔也.
양이면서 양의 자리에 머물면 마치 힘있는 사람이 건강한 말을 부리는 것과 같아서 제어할 수 있다. 무릇 삼효는 음이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임자가 아닌 것을 타고서 그것이 가는 곳을 따르니,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신이 가운데서 어지럽고 눈은 밖을 향해 크게 뜬다. 고요함에 의거해 사물을 관찰하는 자는 사물의 바른 모습을 보는데 육이효가 그렇다. 움직임을 타고 사물을 쫓는 자는 사물의 겉모습만 보는데 육삼효가 그렇다. 복과 비슷한 사물이 꾀어내고, 화와 비슷한 사물이 겁박하는데, 나는 또한 우러러보며 거기에 나아간다. 이미 잘못된 것이라면 뒤에 비록 진실한 자가 있더라도 감히 이것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처음이라면 빠르게 잃어버리겠지만 끝에서는 늦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九四, 由豫大有得. 勿疑, 朋盍簪? 象曰, “由豫大有得, 誌大行也.”
盍, 何不也. 簪, 固結也. 五陰莫不由四而豫, 故大有得. 豫有三豫二貞. 三豫易懷, 而二貞難致. 難致者疑之, 則附者皆以利合而已. 夫以利合亦以利散, 是故來者去者, 觀望而舉勿疑之, 則吾朋何有不固者乎?
합(盍)은 ‘어찌 아니’이다. 잠(簪)은 ‘단단하게 묶다’이다. 다섯 음이 사효로 말미암아 예가 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크게 얻음이 있는 것이다. 예괘에는 3개의 한가함(초효, 삼효, 상효)과 2개의 곧음(이효, 오효)이 있다. 3개의 한가함은 품기가 쉽고, 2개의 곧음은 초래하기가 어렵다. 초래하기 어렵다고 의심한다면 붙어 있는 자가 모두 이익에 따라 모일 뿐이다. 무릇 이익에 따라 모인 것은 이익에 따라 흩어진다. 이런 까닭에 오는 자와 가는 자를 관망하며 모두 의심하지 않는다면 내 친구가 어찌 결속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六五, 貞疾, 恒不死. 象曰, “六五貞疾, 乘剛也. 恒不死, 中未亡也.”
二與五, 皆貞者也. 貞者, 不誌於利, 故皆不得以豫名之. 其貞同, 其所以爲貞者異, 故二以得吉, 五以得疾也. 二之貞非固欲不從四也. 可則進, 否則退, 其吉也, 不亦宜乎? 五之於四也, 其質則陰, 其居則陽也. 質陰則力莫能較, 居陽則有不服之心焉. 夫力莫能較而有不服之心, 則其貞足以爲疾而已. 三豫者皆內喪其守, 而外求豫者也. 故小者悔吝, 大者凶. 六五之貞, 雖以爲疾, 而其中之所守者未亡, 則恒至於不死. 君子是以知貞之可恃也.
이효와 오효는 모두 곧은 자이다. 곧은 자는 이로움에 뜻을 두지 않으므로 모두 예라고 이름할 수 없다. 곧은 것은 같지만, 곧게 된 까닭은 다르므로 이효는 길함을 얻고, 오효는 괴로움을 얻는다. 이효의 곧음은 굳이 사효를 따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따를 만하면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니 그것의 길함은 또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효는 사효와의 관계에서 성질은 음이고, 거처는 양이다. 성질이 음이면 힘을 능히 겨루지 못하며, 거처가 양이면 복종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 힘으로는 능히 겨룰 수 없는데도 복종하는 마음이 없으니, 그 곧음은 괴로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3개의 한가한 자(초효, 삼효, 상효)는 모두 안으로 지키는 바를 잃고 밖으로 한가함을 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작은 자는 후회하거나 부끄럽고 큰 자는 흉한 것이다. 육오효의 곧음은 비록 괴로움이 되지만, 마땅히 지켜야 할 中을 아직 잃지 않았으니, 오래가도 죽지 않는 상황에 이른다. 군자는 이것을 통해 곧음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안다.
上六, 冥豫. 成有渝. 無咎. 象曰, “冥豫在上, 何可長也.”
冥者, 君子之所宜息也. 豫至上六宜息矣, 故曰‘冥豫.’ 成有渝者, 盈輒變也. 盈輒變, 所以爲無窮之豫也.
어둠이라는 것은 군자가 마땅히 쉬어야 할 때이다. 예가 상육효에 이르면 마땅히 쉬어야 하기 때문에 ‘한가함이 어둡다’고 말한다. ‘완성하면 변화가 있다’는 것은 가득 차면 변화한다는 말이다. 가득 차면 문득 변화하는 까닭에 한가함이 무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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