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彖曰, “蠱剛上而柔下, 巽而止蠱. 蠱元亨, 而天下治也. ‘利涉大川’, 往有事也. ‘先甲三日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器久不用而蟲生之, 謂之蠱. 人久宴溺而疾生之, 謂之蠱. 天下久安无爲而弊生之, 謂之蠱. 易曰“蠱者, 事也.” 夫蠱, 非事也. 以天下爲无事而不事事, 則後將不勝事矣. 此蠱之所以爲事也, 而昧者乃以事爲蠱, 則失之矣. 器欲常用, 體欲常勞, 天下欲常事事. 故曰‘巽而止蠱.’ 夫下巽則莫逆, 上止則無爲. 下莫逆而上無爲, 則上下大通而天下治也. 治生安, 安生樂, 樂生媮, 而衰亂之萌起矣. 蠱之災, 非一日之故也, 必世而後見. 故爻皆以父子言之, 明父養其疾, 至子而發也. 人之情 無大患難, 則日入於媮. 天下既已治矣, 而猶以涉川爲事, 則畏其媮也. 蠱之與巽一也. 上下相順,與下順而上止, 其爲媮一也. 而巽之所以不爲蠱者, 有九五以幹之, 而蠱無是也. 故蠱之彖曰“先甲三日後甲三日, 終則有始,” 而巽之九五曰“無初有終, 先庚三日後庚三日吉.” 陽生於子盡於巳, 陰生於午盡於亥. 陽爲君子, 君子爲治. 陰爲小人, 小人爲亂. 夫一日十二, 干相值, 支五干六而後復, 世未有不知者也. 先甲三日後甲三日, 則世所謂六甲也. 先庚三日後庚三日, 則世所謂六庚也. 甲庚之先後, 陰陽相反, 故易取此, 以寄治亂之勢也. 先甲三日, 子戌申也. 申盡於巳而陽盈矣. 盈將生陰, 治將生亂, 故受之以後甲. 後甲三日, 午辰寅也. 寅盡於亥, 然後陰極而陽生. 蠱無九五以幹之, 則其治亂皆極其自然之勢. 勢窮而後變, 故曰“終則有始, 天行也.” 夫巽則不然 初雖失之, 後必有以起之. 譬之於庚, 先庚三, 日午辰寅也. 後庚三日, 子戌申也. 庚之所後, 甲之所先也. 故先庚三日盡於亥, 後庚三日盡於巳. 先陰而後陽, 先亂而後治, 故曰“無初有終.” 又特曰吉, 不言之於巽彖, 而言之於九五者, 明此九五之功, 非巽之功也.
그릇을 오래 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니, 이것을 일러 고라고 한다. 사람이 오랫동안 즐거움에 빠지면 질병이 생기는데 이것을 고라고 한다. 천하가 오랫동안 편안하여 하는 일이 없으면 폐단이 생기는 생기는데 이것을 고라고 한다. 『주역』에 이르기를, “고란 일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고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천하에 일이 없다고 여겨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장차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가 일이 되는 까닭이니, 몽매한 자들이 일을 가지고 고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글은 항상 쓰이고자 하고, 몸은 항상 노동하고자 하며, 천하는 항상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온순하게 그치는 것이 고이다’라고 말한다. 무릇 아래에서 온순하면 거스름이 없고, 위에서 그치면 행위함이 없다. 아래에서 거역함이 없고 위에서는 행위함이 없으면 위와 아래가 크게 통하고 천하가 다스려진다. 다스려짐은 편안함을 낳고, 편안함은 즐거움을 낳으며, 즐거움은 안일함을 낳으니, 쇠란의 싹이 일어난다. 고의 재앙은 하루아침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반드시 한 세대가 지난 뒤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효들이 모두 父子를 언급함으로써 아버지가 그 병을 기른 뒤에 자식에 이르러 발병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큰 환란이 없으면 날마다 안일에 빠진다. 천하가 이미 다스려졌지만 오히려 대천을 건너는 것을 일로 삼으면 안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고괘와 손괘는 동일하다. 상하가 서로 순응하는 것과 아래는 순응하고 위는 그치는 것은 안일함에 있어서는 하나이다. 그러나 손괘가 고가 되지 않는 까닭은 구오효가 손괘를 주관하기 때문인데, 고괘에는 이것이 없다. 그 때문에 고괘의 「단전」에서 “갑일에 3일 앞서거나 갑일의 3일 뒤라는 것은 마치면 시작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손괘의 구오효에서는 “시작이 없으나 끝마침은 있다. 庚日에 3일 앞서거나 경일의 3일 뒤이니 길하다”고 하였다. 陽은 (12간지에서) 子에 생겨서 巳에 다하고, 陰은 午에 생겨서 亥에 다한다. 양은 군자가 되며, 군자는 다스린다. 음은 소인이 되며, 소인은 어지럽힌다. 무릇 하루 12시는 干과 서로 만나서 支가 다섯 차례, 干이 여섯 차례 반복한 뒤에 처음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세상에 알지 못하는 자가 업삳. 갑일에 3일 앞서거나 갑일의 3일 뒤라는 것은 세상에서 六甲이라고 부르는 바이다. 경일에 3일 앞서거나 경일의 3일 뒤라는 것은 세상에서 六庚이라고 부르는 바이다. 갑일과 경일의 앞과 뒤는 음양이 서로 뒤집히므로, 『주역』은 이것을 취하여 治亂의 형세를 빗대었다. 갑일 앞의 3일은 子, 戌, 申이다. 申이 巳까지 오면 양이 가득 찬다. 가득 차면 음을 낳고, 다스려짐은 장차 혼란을 낳기 때문에 이것을 後甲이 받는다. 갑일 뒤의 3일은 午, 辰, 寅이다. 寅이 亥에 도달한 뒤에 음은 극에 이르러 양을 낳는다. 고괘는 구오효가 없어 이 상황을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치란은 모두 자연의 형세에 따라 극에 이르게 된다. 세력이 국지에 이른 뒤에는 변하게 되므로 “마치면 시작이 있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손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처음에는 비록 잃게 되지만 뒤에는 반드시 세우게 된다. 이것을 庚에 비유하면 경일 앞의 3일은 午, 辰, 寅이다. 경일 뒤에 3일은 子, 戌, 申이다. 庚의 뒤는 甲의 앞이다. 경일 앞의 3일은 십이간지의 亥에서 끝나고, 경일 뒤의 3일은 십이간지의 巳에서 끝난다. 먼저 음이 있은 뒤에 양이 있고, 먼저 어지러운 뒤에 다스려지므로 “시작은 없으나 끝마침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길하다’는 말을 손괘의 단전에서 말하지 않고 구오효에서 말한 것은 이 일이 구오효의 공이지 손의 공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象曰, “山下有風蠱. 君子以振民育德.”
鼓之舞之之謂振. 振民使不惰, 育德使不竭.
북치고 춤추는 것을 振이라고 부른다. 백성을 진작시켜 게으르지 않게 하고, 덕을 길러서 망하지 않게 한다.
初六, 幹父之蠱. 有子考無咎. 厲終吉. 象曰, “幹父之蠱, 意承考也.”
蠱之爲災, 非一日之故也. 及其微而幹之, 初其任也. 見蠱之漸, 子有改父之道. 其始雖危, 終必吉. 故曰“有子考無咎”, 言無是子, 則考有咎矣. 孝愛之深者, 其迹有若不順, 其迹不順, 其意順也.
고의 재앙은 하루아침에 연유한 것이 아니다. 고가 미미할 때 주관하는 것이 초효의 임무이다. 고가 점차 자라는 것을 보고 아들이 아버지의 도를 고치니, 그 시작은 비록 위태하지만 마침내는 반드시 길하다. 그러므로 “자식이 있으면 늙은 아버지도 허물이 없다”는 말은 자식이 없다면 늙은 아버지가 허물이 있다는 말이다. 늙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이 깊으면 그 행위는 마치 不順한 것 같다. 그러나 그 행위는 불순하더라도 그 뜻은 순조로운 것이다.
九二, 幹母之蠱, 不可貞. 象曰, “幹母之蠱, 得中道也.”
陰之爲性, 安无事而惡有爲. 是以爲蠱之深, 而幹之尤難者, 寄之母也. 正之則傷愛, 不正則傷義, 以是爲至難也. 非九二, 其孰能任之? 故責之二也. 二以陽居陰, 有剛之實, 而無用剛之迹, 可以免矣.
음의 성질은 무사함에 안주하며 행위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고가 깊어져 이것을 바로잡기가 더욱 어려우니, 어머니에게 기탁한 것이다. 이것을 바로 잡으려 하면 사랑을 해치고, 바로잡지 못하면 의로움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구이효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것을 맡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효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효는 양이면서 음의 자리에 머물러 강의 실다움은 있지만 강한 행동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九三, 幹父之蠱. 小有悔, 無大咎. 象曰, “幹父之蠱, 終無咎也.”
九三之德, 與二無以異也. 特不知所以用之. 二用之以陰, 而三用之以陽, 故小有悔而無大咎.
구삼효의 덕은 이효와 다름이 없다. 다만 이것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효는 음의 방식으로 작용하고, 삼효는 양의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조금의 후회는 있지만 커다란 허물은 없는 것이다.
六四, 裕父之蠱. 往見吝. 象曰, “裕父之蠱, 往未得也.”
六四之所居, 與二無以異也, 而無其德, 斯益其疾而巳. 裕, 益也.
육사효가 머무는 곳은 이효와 다름이 없으나 그가 덕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병을 더할 뿐이다. 유는 더하다이다.
六五, 幹父之蠱, 用譽. 象曰, “幹父用譽, 承以德也.”
父有蠱而子幹之, 猶其有疾而砭藥之也. 豈其所樂哉? 故初以獲厲, 三以獲悔. 六五以柔居中, 雖有幹蠱之志, 而无二陽之決, 故反以是獲譽. 譽歸於己, 則疾歸於父矣. 父之德, 惟不可承也. 使其可承, 則非蠱矣. 蠱而承德, 是以無巽九五, 後庚之吉.
아버지에게 고가 있어 자식이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마치 병이 들어 돌침과 약을 쓰는 것과 같다. 어찌 이것이 즐거워할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초효는 위태함을 얻고, 삼효는 후회함을 얻는다. 육오효는 부드러움으로서 가운데 머무니, 비록 고를 주관하려는 뜻은 있지만 이효인 양의 결단이 없으므로 돌아와 명예를 얻는다. 명예가 내 몸에 돌아오면 병은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이 아버지의 덕은 진실로 이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잇는 것이 옳다고 고가 아닐 것이다. 고인데도 덕을 잇는다면 손괘 구오효에서 말하는 경일 뒤의 길함이 없게 된다.
上九, 不事王侯, 高尚其事. 象曰, “不事王侯, 志可則也.”
君子見蠱之漸, 則涉川以救之, 及其成, 則不事王侯以遠之. 蠱之成也, 良醫不治, 君子不事事.
군자는 고가 점차 일어나는 것을 보면 개천을 건넘으로써 이것을 구제하고, 고가 이루어진 뒤에는 왕후를 섬기지 않음으로써 이것을 멀리한다. 고가 이루어지면 훌륭한 의사도 고치지 못하고, 군자도 일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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