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 盥而不薦. 有孚颙若. 彖曰, “大觀在上, 順而巽, 中正以觀天下. 觀盥而不薦, 有孚颙若, 下觀而化也. 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 聖人以神道設教, 而天下服矣.”
無器而民趨, 不言而物喻者, 觀之道也. ‘聖人以神道設教’, 則賞爵刑罰有設, 而不用者矣. 寄之宗廟, 則盥而不薦者也. 盥者以誠, 薦者以味.
도구를 쓰지 않고 백성을 통솔하고, 말하지 않고 사물을 꺠우치는 것이 觀의 도이다. ‘성인이 신도로써 가르침을 베푼다’는 것은 상작과 형벌이 갖추어져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종묘에 빗대면, 손을 씻지만 제물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손을 씻는 것은 진실되기 때문이고, 제물을 올리는 것은 맛있기 때문이다.
象曰, “風行地上觀, 先王以省方, 觀民, 設教.” 初六, 童觀, 小人無咎. 君子吝. 象曰, “初六童觀, 小人道也.”
大觀在上, 故四陰皆以尙賓爲事. 初六童而未仕者也. 急於用以自衒賈, 惟器小而夙成者爲無咎, 君子則吝矣.
커다란 관찰이 위에 있으므로 네 음효는 모두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을 일로 삼는다. 초육효는 나이가 어려 아직은 벼슬하지 않은 자이다. 쓰이는 데에 급급해 스스로의 가치를 자랑하는 것은 그릇이 작아 빨리 완성자에게는 허물이 없겠으나 군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다.
六二, 窺觀. 利女貞. 象曰, “窺觀女貞, 亦可醜也.”
六二遠且弱, 宜處而未宜實者也. 譬之於女, 利貞而不利行者也. 茍以此爲觀, 則是女不待禮, 而窺以相求, 貞者之所醜也.
육이효는 멀고 또 약하니 처하는 것은 마땅하나 손님 대접을 받는 것은 마땅치 않은 자이다. 여자에 비유하자면, 곧음이 이롭고 행함이 이롭지 않은 자이다. 만약 이것을 볼 것 같으면, 여자가 예의를 지키지 않고 틈으로 엿보면서 상대를 찾는 것이니, 곧은 자가 부끄럽게 여기는 바이다.
六三, 觀我生, 進退. 象曰, “觀我生進退, 未失道也.”
六三, 上下之際也. 故當自觀其生以卜進退, 夫欲知其君, 則觀其民. 故我之生, 則君之所爲也. 知君之所爲, 則進退決矣. 進退在我, 故未失道也.
육삼효는 위아래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스스로가 그 삶을 觀하고 진퇴를 선택한다. 무릇 그 군왕을 알고자 하면 그 백성을 관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은 바로 군왕이 행한 바이다. 군왕이 행한 바를 알면 진퇴가 결정된다. 진퇴가 나에게 달려 있으므로 아직 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
六四, 觀國之光. 利用賓於王. 象曰, “觀國之光, 尙賓也.”
進退之決在六三, 故自三以下, 利退而不利進, 自三以上, 利進而不利退. 進至於四, 決不可退矣. 故‘利用賓於王’.
진퇴의 결단은 육삼효에 달려 있기 때문에 삼효 이하는 물러남이 이롭고 나아감이 불리하며, 삼효 이상은 나아감이 이롭고 물러남이 불리하다. 나아가 사효에 이르면 결코 물러날 수 없다. 그러므로 ‘왕에게 손님으로 쓰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九五, 觀我生, 君子無咎. 象曰, “觀我生, 觀民也.” 上九, 觀其生. 君子無咎. 象曰, “觀其生, 誌未平也.”
此二觀, 所自言之者不同, 其實一也. 觀我生, 讀如觀兵之觀; 觀其生, 讀如觀魚之觀. 九五以其至顯, 觀之於民以我示民. 故曰‘觀我生’. 上九處於至高, 而下觀之, 自民觀我. 故曰‘觀其生’. 今夫乘車於道, 負者, 皆有不平之心. 聖人以其一身, 擅天下之樂, 厚自奉以觀示天下, 而天下不怨. 夫必有以大服之矣. 吾以吾可樂之生而觀之人, 人亦觀吾生可樂, 則天下之爭心, 將自是而起. 故曰‘君子無咎’. 君子而後無咎, 難乎其無咎也!
이 두 개의 觀은 스스로 말하는 바는 같지 않으나, 그 실제는 하나이다. ‘관아생’의 관은 ‘觀兵’의 관과 같이 해독하며, ‘관기생’의 관은 ‘觀魚’와 같이 해독한다. 구오효는 지극히 드러나기 때문에 觀함이 백성에게 있으니, 나를 백성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드러내 보인다’고 말한 것이다. 상구효는 지극히 높은 곳에 처하기 때문에 아래에서 이것을 觀하니, 백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삶을 바라본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길에서 수레를 타고 간다면 짐을 지고 가는 자는 모두 불평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성인은 그 한몸으로 천하의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두텁게 스스로를 받들어 천하에 드러내 보이지만 천하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반드시 크게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즐길 만한 삶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역시 내 삶이 즐길 만하다고 바라본다면, 천하의 다투는 마음이 장차 이것으로부터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라야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군자가 된 뒤에야 허물이 없으니, 허물이 없게 되는 것은 어렵도다!
* ‘관아생’의 관과 같은 뜻인 ‘觀兵’의 관은 춘추좌전의 魯宣公 12년조 '觀兵以威諸侯, 兵不戢矣.'를, ‘관기생’의 관과 같은 뜻인 ‘觀魚’는 춘추좌전의 魯隱公 5년조 '五年春, 公將如棠觀魚者.'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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