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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역전] 21. 서합괘(噬嗑卦, ䷔)

베트남10선비 2023. 3. 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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噬嗑, . 利用獄.

道之衰也, 而物至於相噬, 以求合教化則已晚矣. 故利用獄.

도가 쇠퇴하여 사물이 서로를 물어뜯는 데 이르렀기에 화합을 구하여 교화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므로 감옥을 쑤는 것이 이롭다.

彖曰, “頤中有物, 曰噬嗑.

所以爲噬嗑者, 四也. 否則爲頤矣.

서합이 되는 까닭은 사효이다. 아니라면 괘가 된다.

噬嗑而亨. 剛柔, 分動而明.

噬嗑之時, 噬非其類而居其間者也. 陽欲噬陰以合乎陽, 陰欲噬陽以合乎陰. 故曰剛柔分動而明.

서합의 때는 같은 부류가 아니면서 그 사이에 머무는 것을 씹는 것이다. 양은 음을 씹어 다른 양과 합하고자 하며, 음은 양을 씹어서 다른 음과 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강유가 나뉘어 움직이면 밝다고 말한 것이다.

雷電合而章. 柔得中而上行. 雖不當位, 利用獄也.”

謂五也.

오효를 말한다.

象曰, “雷電噬嗑. 先王以明罰勅法.” 初九, 屨校滅趾. 無咎. 象曰, “屨校滅趾, 不行也.”

居噬嗑之時, 六爻未有不以噬爲事者也. 自二與五反復相噬, 猶能戒以相存也. 惟初與上, 內噬三陰, 而莫或噬之貪得而不戒. 故始於小過, 終於大咎. 聖人於此兩者, 寄小人之始終; 於彼四者, 明相噬之得喪.

서합의 때에는 여섯 효에서 씹는 것을 일삼지 않는 자가 없다. 이효에서 오효에 이르기까지는 서로 씹기를 반복하나, 오히려 조심하기 때문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초효와 상효는 안의 세 음효를 씹는 데 절제 없이 욕심을 부리고 조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잘못에서 시작하여 커다란 허물로 끝난다. 성인은 이 두효에서 소인의 시작과 끝을 빗대었고, 저 네 효에서는 서로 씹는 일의 얻음과 잃음에 대해 밝혔다.

六二, 噬膚滅鼻, 無咎. 象曰, “噬膚滅鼻, 乘剛也.”

以陰居陰, 至柔而不拒者也. 故初九噬之, 若噬膚然, 至於滅鼻, 而不知止也. 夫滅鼻而不知止者, 非初之利也. 非初之利, 則二無咎矣.

육이효는 음으로 음의 자리에 머무니 지극히 부드럽고 거부하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초구효가 이것을 씹는 것은 마치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것과 같아서 코가 파묻히는 상황에 이르러도 그칠 줄 모른다. 코가 파묻히는데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은 초효의 이로움이 아니다. 초효에게 이롭지 않으면 이효에게는 허물이 없다.

六三, 噬臘肉遇毒. 小吝無咎.

腊肉乾胏乾肉, 皆難噬者也. 凡易以陰居陽, 則不純乎柔中有剛矣. 故六三六五, 皆有難噬之象. 夫勢之必不能拒也, 則君子以不拒爲大, 六二是也. 六三之於九四, 力不能敵, 而懷毒以待之, 則已陋矣. 故曰小吝’. 出於見噬而不能堪也, 故非其咎.

말린 돼지고기, 뼈에 붙은 마른 고기, 말린 고기는 모두 씹기 어려운 것이다. 보통 주역에서 음이 양의 자리에 머물면 부드러움 가운데 강함이 있어서 불순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삼효와 육오효는 모두 씹기 어려운 형태가 있다. 무릇 그 형세가 반드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군자는 막지 않음을 위대함으로 여기는데, 육이효가 그러하다. 육삼효가 구사효에게 힘으로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독을 품고 그것을 기다린다면, 이미 비루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 부끄럽다고 말한 것이다. 씹힘을 당해 견딜 수 없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은 허물이 아니다.

석육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

 

腊肉_百度百科

腊(xī là 同“臘”)肉是指肉经腌制后再经过烘烤(或日光下曝晒)的过程所制成的加工品。腊肉的防腐能力强,能延长保存时间,并增添特有的风味,这是与咸肉的主要区别。腊肉并非因为

baike.baidu.com

象曰, “遇毒, 位不當也.”

若以陰居陰, 則無復有毒矣.

만약 음으로 음에 머물면 더 해로움이 있지 않을 것이다.

九四, 噬幹胏, 得金矢.

取其堅而可畏.

그것이 견고해서 두려워할 만하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利艱貞, . 象曰, “利艱貞吉, 未光也.” 六五, 噬幹肉, 得黃金.

取其居中而貴.

그것이 가운데 머물며 귀하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貞厲, 無咎. 象曰, “貞厲無咎, 得當也.”

九四居二陰之間, 六五居二陽之間, 皆處爭地而致交噬者也. 夫不能以德相懷, 而以相噬爲志者, 惟常有敵, 以致其噬, 則可以少安. 苟敵亡矣. 噬將無所施, 不幾於自噬乎? 由此觀之, 無德而相噬者, 以有敵爲福矣. 九四噬乾胏得金矢, 六五噬乾肉得黃金. 九四之難噬, 是六三六五之得也. 六五之難噬, 是九四上九之得也. 得之爲言, 猶曰賴此以存云爾. ‘利艱貞吉’, ‘貞厲無咎’, 皆未可以居安而享福也. 惟有德者, 爲能居安而享福, 夫豈賴有敵而後存邪? 故曰未光也. 得當者, 當於二陽之間也.

구사효는 두 음효 사이에 머물며, 육오효는 두 양효 사이에 머무니, 모두 다투는 땅에 처하여 서로를 물어뜯기에 이른 것이다. 무릇 덕으로 서로를 품지 못하여 서로 물어뜯기로 뜻을 세운 자는 항상 적을 두고 물어뜯어야만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다. 만약 적이 없어져서 장차 물어뜯을 것이 없다면 스스로를 씹으려 하지 않겠는가? 이것으로 볼 때, 덕이 없어 서로를 물어뜯을 자는 적이 있는 것을 복으로 삼는다. 구사효는 간자를 씹다가 쇠로 된 화살촉을 얻고, 육오효는 간육을 씹다가 황금을 얻는다. 구사효가 씹기 어려운 것은 육삼효와 육오효가 얻은 것이고, 육오효가 씹기 어려운 것은 구사효와 상구효가 얻은 것이다. ‘얻는다는 말은 이것에 의존하여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려워도 곧음이 이롭고 길하다곧으면 위태하더라도 허물이 없다는 모두 아직은 편안히 머물면서 복을 누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덕이 있는 자만이 편안히 머물며 복을 누릴 수 있으니, 어찌 적이 있음에 의존해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아직은 빛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마땅함을 얻었다는 것은 두 양의 사이에서 마땅하다는 것이다.

* 乾魚物처럼 현대에는 으로 읽지만, ‘마르다는 의미일 때는 원래 으로 읽는다.

上九, 何校滅耳? . 象曰, “何校滅耳, 聰不明也.”

滅趾者, 止其行而已, 不行猶可以無咎. 滅耳則廢其聰矣, 無及也. 故凶.

발을 못 쓰게 한 것은 그 행함을 그치게 한 것이니, 행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귀를 막는 것은 그 총명함을 틀어막은 것이니 이르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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