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서
泰, 小往大來, 吉亨. 彖曰, “泰, 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陽始於復而至於泰, 泰而後爲大壯, 大壯而後爲夬, 泰之世不若大壯與夬之世, 小人愈衰而君子愈盛也. 然而聖人獨安夫泰者, 以爲世之小人不可勝盡. 必欲迫而逐之, 使之窮而無歸, 其勢必至於爭, 爭則勝負之勢, 未有決焉. 故獨安夫泰, 使君子居中, 常制其命, 而小人在外, 不爲無措. 然後君子之患, 無由而起, 此泰之所以爲最安也.
양(陽)은 복괘에서 시작해 태괘에 이르고, 태괘 이후에는 대장괘가 되며, 대장괘 이후에는 쾌괘가 되니, 태괘의 세상은 대장괘와 쾌괘의 세상에서 소인이 더욱 쇠퇴하고 군자는 더욱 번성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성인이 홀로 태에 안주하는 것은 세상의 소인들이 이루 다 해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필코 다그쳐서 쫓아내고 궁지로 몰아서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면 그 형세는 반드시 다투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다투게 되면 이기느냐 지느냐의 형세를 결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태에 안주하며 군자로 하여금 중(中)에 머물러 늘 그 명(命)을 통제하게 하고, 소인은 밖에 있으면서 손발을 둘 곳이 있도록 만든다. 그런 후에 군자의 우환이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 없게 되는데, 이것이 태괘가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되는 까닭이다.
象曰, “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財, 材也. 物至於泰極矣, 不可以有加矣. 故因天地之道而材成之, 卽天地之宜輔相之, 以左右民, 使不入於否而已. 否未有不自其已甚者始. 故左右之使不失其中, 則泰可以常保也.
財는 ‘마름질하다’라는 뜻이다. 사물이 태의 상태에 이르면 극을 이룬 것이므로 추가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로 인하여 그것을 마름질해 완성을 하고, 천지의 마땅함에 나아가 서로 도와 백성들을 좌우하여 하여금 막힌(否, 비)의 상태로 들어가지 않게 할뿐이다. 막힌 상태는 지나친 자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좌우하여 그 中을 잃지 않게 하면 태를 항상 지킬 수 있다.
初九, 拔茅茹. 以其彙征, 吉. 象曰, “拔茅征吉, 志在外也.”
王弼曰, “茅之爲物, 拔其根而相連引者也. 茹, 相連之貌也. 三陽同志, 俱志於外, 初爲類首, 擧則類從, 故曰‘以其彙征, 吉.’”
왕필이 말하였다. “띠의 성질은 그 뿌리를 뽑으면 서로 연결되어 당겨지는 것이다. 여라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세 양효가 그 뜻을 같이 하여 바깥에 뜻을 두는데, 초효가 무리의 선봉이 되니 그것을 들러올리면 무리가 뒤따른다. ‘그 무리와 함꼐 정벌하면 길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九二,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得尙于中行. 象曰, “包荒, 得尙于中行, 以光大也.”
陽皆在內, 據用事之處而擯三陰於外, 此陰之所不能堪也. 陰不能堪, 必疾陽, 疾陽斯爭矣. 九二陽之主也, 故包荒用馮河, 馮河者, 小人之勇也. 小人之可用, 惟其勇者. 荒者, 其無用者也. 有用者用之, 無用者容之, 不遐棄也. 此所以懷小人爾. 以君子而懷小人, 其朋以爲非也而或去之, 故曰‘朋亡.’ 然而得配於六五, 有大援於上, 君子所以愈安也. 雖亡其朋而卒賴以安, 此所以爲光大也.
양은 모두 안에 있고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거처하면서 밖의 세 음효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음이 감당할수 없다면 필히 양을 미워할 것이고, 양을 미워하면 이에 다툼이 생긴다. 구이효는 양의 主이기 때문에 쓸모없는 자를 포용하고, 걸어서 강을 건너는 자를 쓴다. 걸어서 강을 건너는 것은 소인의 용감함이다. 소인 가운데 이용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용감한 자뿐이다. 荒이란 쓸모없는 자를 말한다. 쓸모있는 자는 이용하고 쓸모없는 자는 포용하여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소인을 품는 방법이다. 군자가 소인을 품으니 그 친구는 잘못이라 여기고 때로는 떠나기도 하기에 ‘친구가 사라진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육오효를 짝으로 얻어 위에서 큰 도움이 있게 되니, 군자는 더욱 편안해진다. 비록 그 친구는 잃지만 마침내 큰 힘을 얻어 편안해지니 이것이 크게 빛나는 까닭이다.
九三, 无平不陂, 无往不復. 艱貞無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象曰, “無往不復, 天地際也.”
乾本上也, 坤本下也. 上下交, 故乾居於內, 而坤在外, 苟乾不安其所, 而務進以迫坤,則夫順者將至於逆. 故曰‘無平不陂.’ 坤不獲安於上, 則將下復以奪乾, 乾之往適所以速其復也. 故曰‘無往不復.’ 當是時也, 坤已知難而貞於我, 則可以無咎之矣. 九三之所孚者, 初與二也. 以其所孚者, 爲樂進以迫坤, 而重違之則危矣. 故教之以勿恤其孚而安於食, 是以有泰之福.
건은 위에 근본을 두고 있고, 곤은 아래에 근본을 두고 있다. 위아래가 서로 통교하기 때문에 건이 안에 머물고 곤은 밖에 위치하지만, 다만 건이 그곳을 편안히 여기지 않고 나아가기를 힘써 곤을 다그친다면 저 순종하는 자가 거역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평평한 것은 기울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곤이 위에서 편안함을 얻지 못하면 장차 아래로 돌아와 건을 약탈하려 해서 건이 나아가는 것이 곤의 복귀를 신속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가는 것은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를 맞이하여 곤이 이미 어렵다는 걸 알고서 나에게 곧을 수 있다면 가히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구삼효가 의지하는 자는 초효와 이효이다. 자기가 의지하는 자가 즐거이 나아가 곤을 다그쳐서 거듭하여 배반하게 만든다면 위태롭다. 그러므로 그 의지하는 자를 근심하지 않고 먹고사는 데에 있어 편안하게 하면 이로 인해 태의 복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六四, 翩翩, 不富以其隣, 不戒以孚. 象曰, “翩翩不富, 皆失實也. 不戒以孚, 中心願也.”
王弼曰, “乾樂上復, 坤樂下復, 四處坤首. 六五上六, 皆失其故處而樂下者. 故翩翩相從, 不必富而能用其鄰, 不待戒而自孚.”
왕필이 말하였다. “건은 즐거이 위로 돌아가고, 곤은 즐거이 아래로 복귀하는데, 사효는 곤의 선두에 위치해있다. 육오효와 상육효는 모두 그 예전의 거처를 잃고 즐거이 내려가는 자이다. 그러므로 편편히 서로 따르니 반드시 부유하지 않더라도 능히 그 이웃을 활용할 수 있으며 경계하지 않고 자연히 의지한다.”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象曰, “以祉元吉, 中以行願也.”
妹, 女之少者也. 易女少而男長, 則權在女. 六五以陰居尊位, 有帝乙歸妹之象焉. 坤樂下復, 下復而奪乾, 乾則病矣, 而亦非坤之利也. 乾病而疾坤, 坤亦將傷焉, 使乾不病, 坤不傷. 莫如以輔乾之意而行其下復之願. 如帝女之歸其夫者. 帝女之歸也, 非求勝, 其夫將以祉之. 坤之下復, 非以奪, 乾將以輔之. 如是而後可.
매(妹)는 여성의 나이가 어린 것이다. 『주역』에서 여자가 어리고 남자가 나이가 들면 실권은 여성에게 있다. 육오효는 음이면서 존귀한 지위에 머무르니, 제을이 어린 딸을 시집보내는 형태가 있다. 곤은 즐거이 아래로 돌아가는데, 아래로 돌아가 건의 자리를 침탈하면 건은 병이 들고 또한 곤에게도 이롭지 않다. 건이 병들면 곤을 미워하여 곤 또한 다칠 것이니, 건에게 병이 나지 않게 해야 곤이 다치지 않는다. 따라서 건의 뜻을 도움으로써 아래로 돌아가려는 소원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마치 제을의 딸이 그 남편에게 시집가는 것과 같다. 제을의 딸이 시집가는 것은 승리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니 그 남편이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곤이 아래로 돌아가는 것이 건을 약탈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건이 도와주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뒤에야 옳을 것이다.
上六, 城復于隍, 勿用師. 自邑告命, 貞吝. 象曰, “城復于隍, 其命亂也.”
取土於隍, 而以爲城封而高之, 非城之利, 以利人也. 泰之所以厚坤於外者, 非以利坤, 亦以衛乾爾. 坤之在上而欲復於下, 猶土之爲城, 而欲復於隍也. 有城而不能固之, 使復於隍, 非城之罪, 人之過也. 故勿用師. 上失其衛, 則下思擅命, 故自邑告命. 邑非所以出命也. 然既以失之矣, 從而懷之則可, 正之則吝.
파인 땅에서 흙을 취해 성을 높게 돋우는 것은 성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태괘가 밖에 있는 곤을 두텁게하는 까닭은 곤을 이롭게 하려는 게 아니라 건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곤이 위에 있으면서 아래로 돌아가려는 것은 흙이 성에 있으면서 아래의 파인 땅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같다. 성이 있는데도 그것을 지키기 못하고 아래의 파인 땅을 메우게 만드는 것은 성의 죄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이다. 그러므로 ‘군대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이다. 윗사람이 보호를 잃게 되면 아랫사람이 제멋대로 命을 생각해내기 때문에 ‘읍으로부터 명을 알린다’고 한 것이다. 읍은 명을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통제력을 잃었으니, 상황을 받아들여 안주하는 것은 옳지만,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부끄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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