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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역전] 9. 소축괘(小畜卦, ䷈)

베트남10선비 2023. 3. 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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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 彖曰 : “小畜柔得位, 而上下應之, 曰小畜.

謂六四也. 六四之謂小矣. 五陽皆謂六四之小畜, 是以大而畜於小也.

육사효를 말한다. 육사효를 일러 小(작음)이라 한다. 다섯 양효가 모두 육사효에게 축적되니 大가 小에 축적되는 것이다.

健而巽, 剛中而志行, 乃亨.

未畜而亨, 則巽之所以畜乾者, 順之而已.

아직 축적하지 않았는데도 성장한다면 巽이 乾을 축적하는 방법은 순응하는 것뿐이다.

‘密雲不雨,’ 尙往也. ‘自我西郊,’ 施未行也.”

乾之爲物, 難乎其畜之者也. 畜之非其人, 則乾不爲之用. 雖不爲之用而眷眷焉. 不決去之, 卒受其病者, 小畜是也. 故曰‘密雲不雨自我西郊.’ 夫陽施於陰, 則爲雨. 乾非不知巽之不足以任吾施也, 然其爲物也, 健而急於用, 故進而嘗試焉. 旣已爲密雲矣, 能爲密雲而不能爲雨, 豈眞不能哉? 不欲雨也. 雨者, 乾之有爲之功也, 不可以輕用. 用之於其非人, 則喪其所以爲乾矣. 乾知巽之不足以任吾施也. 是以遲疑而重發之, 欲之於巽而未決, 故次於我之西郊. 君子是以知乾之終病也. 旣以爲雲矣, 則是欲雨之道也, 能終不雨乎? 旣已次於郊矣, 則是欲往之勢也, 能終不往乎? 雲而不雨, 將安歸哉? 故卦以爲不雨, 而爻不免於雨者, 勢也. 君子之於非其人也, 望而去之, 況與之爲雲乎? 旣已爲雲矣, 又可反乎? 乾知巽之不足與雨矣, 而猶往從之, 故曰‘密雲不雨, 尙往也.’

乾의 속성은 축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축적하는 자가 적임자가 아니라면, 건은 그것을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을 위해 활동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두고 잊지 않는다. 건이 떠날 결심을 하지 못하고 끝내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소축괘’이다. 그러므로 ‘짙은 구름에 비가 내리지 않으니 나로부터 서쪽 교외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무릇 陽이 陰에게 베푸는 것이 있다면 비가 된다. 乾은 巽이 자신의 시혜를 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이 굳건하고 작용을 서두르는 탓에 나아가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이미 짙은 구름이 되었다면, 짙은 구름은 될 수 있는데 비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어찌 참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는가? 비를 내리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는 건의 有爲의 功이니 가볍게 사용할 수 없다. 적임자가 아닌데 그것을 사용하면 건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건은 손이 자신의 시혜를 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의심하고 망설이면서도 거듭 뜻을 내고, 손에게 가려고 하면서도 아직 결단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신의 서쪽 교외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건이 끝내 병이 들 것을 안다. 이미 구름으로 되었다면 장차 비가 내리려는 道이니, 마침내 비가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교외에 머물고 있다면 장차 나아가려는 형세이니, 마침내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름이 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그러므로 卦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爻는 비가 내림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대세인 것이다. 군자는 적임자가 아니라면 보기만 해도 떠나야 하는데, 하물며 함께 구름이 되는 것이겠는가? 이미 구름이 되었다면 다시 돌이킬 수 있겠는가? 건은 손이 함께 비를 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이것에 나아가 따르기 때문에, ‘짙은 구름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나아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象曰 “風行天上小畜. 君子以懿文德.”

夫畜己而非其人, 則君子不可以有爲, 獨可以雍容講道, 如子夏之在魏, 子思之在魯, 可也.

무릇 축적하는 자가 적임자가 아니라면 군자는 有爲할 수 없다. 따라서 자하가 위나라에 있을 때나 자사가 노나라에 있을 때와 같이 홀로 온화하고 차분하게 道를 가르쳐야 옳다.

初九, 復自道, 何其咎? 吉. 象曰, “復自道, 其義吉也.” 九二, 牽復. 吉. 象曰, “牽復, 在中亦不自失也.” 九三, 輿說輻, 夫妻反目. 象曰, “夫妻反目, 不能正室也.”

陽之畜乾也, 厲而畜之. 厲而畜之者, 非以害之也, 將盈其氣而作之爾. 陰之畜乾也, 順而畜之. 順而畜之者, 非以利之也, 將卽其安而靡之爾. 故大畜將以用乾, 而小畜將以制之. 乾進而求用則可, 進而受制則不可. 故大畜之乾以之艮爲吉, 小畜之乾以之巽爲凶. 乾之欲去於巽, 必自其交之未深也, 去之則易. ‘初九, 復自道, 何其咎? 吉,’ 進而嘗之, 知其不可反循, 故道而復其所則無咎. 九二交深於初九矣. 故其復也必自引而後脫, 蓋已難矣. 然猶可以不自失也. 至於九三, 其交益深而不可復, 則脫輻而與之處. 與之處可也. 然乾終不能自革其健, 而與巽久處而無尤也. 故終於反目.

陽이 乾을 축적할 때는 맹렬하게 축적한다. 맹렬하게 축적하는 것은 乾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장차 그 기운을 가득 차게 만들려는 것일 뿐이다. 陰이 乾을 축적하는 것은 순응하여 축적하는 것이다. 순응하여 축적하는 것은 乾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장차 편안한 곳에 나아가 乾을 묶어 두려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大畜卦는 장차 乾을 활용하려 하지만 小畜卦는 이를 제약하려 한다. 乾이 나아가서 활용하려 하지만 小畜卦는 이를 제약하려 한다. 乾이 나아가서 활용을 구하는 것은 옳지만, 나아가서 제약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므로 대축괘의 乾은 艮으로 나아가 길하게 되지만, 小畜卦의 乾은 巽으로 나아가 흉하게 된다. 乾이 巽에서 떠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사귐이 깊지 않았을 때 떠나는 것이 쉽다. ‘초구효는 자신의 道를 회복하니 어떻게 그것이 허물이겠는가? 길하다’는 것은 乾이 나아가 巽과 접촉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아서, 道로써 그 처소에 복귀하니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구이효는 초구효와 깊이 교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의 복귀는 반드시 스스로 이끌린 뒤에야 벗어나게 되므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스스로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구삼효에 이르면 그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복귀할 수 없으므로 차축이 풀어져 巽과 함께 머물게 된다. 손과 함께 머무는 것은 옳지만, 乾이 끝내 자신의 굳건함을 스스로 변혁하지 못하여 그 굳건함을 가지고 巽과 더불어 오랫동안 머문다면 원망할 수도 없기 때문에 반목으로 끝마치는 것이다.

六四, 有孚, 血去惕出, 無咎. 象曰, “有孚惕出, 上合志也.” 九五, 有孚攣如, 富以其隣. 象曰, “有孚攣如, 不獨富也.”

凡巽皆陰也. 六四固陰矣, 九五上九, 其質則陽, 其志則陰也. 以陰畜乾, 乾知其不可也易, 以質陽而志陰者畜乾, 乾知其不可也難. 何則不知其志而見其類也. ‘六四, 有孚, 血去惕出, 無咎,’ 六四之所孚者, 初九也. 初九欲去之, 六四欲畜而留之, 陰陽不相能, 故傷而去, 懼而出也. 以其傷且懼, 是以知陰之畜乾, 其欲害乾之意見於外也. 如此以其爲害也淺, 而乾去之速, 故無咎. 若夫九五之畜乾也則不然. 所孚者旣已去我矣, 我且挽援而留之, 若中心誠好之然. 此乾之所以眷眷而不悟, 自引而後脫. 二者, 皆欲畜乾而制之, 顧力不能. 是以六四與上合志, 而九五以其富附其隣, 幷力以畜之. 隣, 上九也.

무릇 巽은 모두 陰이다. 육사효는 물론 陰이고, 구오효와 상구효도 그 바탕은 陽이지만 그 뜻은 음이다. 음으로 건을 축적하면 건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가 쉽지만, 바탕은 양인데 뜻이 음인 것은 건으로 축적하면 건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뜻은 모르고서 그 종류만 보기 때문이다. ‘육사효는 믿음이 있는 자가 피를 흘리며 떠나고 두려워하며 벗어나나 허물은 없다.’ 육사효의 신뢰를 받는 자는 초구효이다. 초구효는 떠나고자 하는데 육사효가 붙잡아서 머물게 하기 때문에 음양이 서로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처를 입고 떠나며 두려워하면서 나온다. 초구효가 상처를 입고 또 두려워하는 것으로 볼 때, 음이 건을 축적하는 것은 건을 해치려는 뜻이 밖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해로움이 크지 않을 때 건이 빨리 떠나게 되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한편, 구오효가 건을 축적하는 경우는 이와 다르다. 신뢰받는 자가 이미 나를 떠나버린 상태에서 내가 다시 잡아당겨 그를 머물게 하니, 마치 마음속에서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건이 연모하며 깨닫지 못하다가 스스로 끌어당겨진 뒤에야 벗어나게 되는 까닭이다. 이 두 효는 모두 건을 축적하여 제약하고자 하는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육사효는 위와 더불어 뜻을 합하고, 구오효는 그 부유함을 이웃에게 주어 힘을 합쳐 축적하는 것이다. ‘이웃’이란 상구효를 말한다.

上九, 旣雨旣處, 尙德載. 婦貞厲. 月幾望, 君子征凶. 象曰, “旣雨旣處, 德積載也. 君子征凶, 有所疑也.”

小畜之世, 宜不雨者也. 九三之於上九, 其勢不得不雨者. 以密雲之不可反而舍上九, 則無與雨也. 旣已與之雨, 則爲其人矣, 可不爲之處乎? 乾, 非德不止. 九五上九質陽而志陰, 故能尙德而載乾. 尙德者, 非眞有德之謂也. 九五上九, 知乾之難畜, 故積德而共載之. 此陽也而謂之婦, 明其實陰也. 以上畜下, 故貞. 乾不心服, 故厲. 以陰勝陽, 故月幾望. 君子之征, 自其交之未合, 則無咎. 旣已與之雨矣而去之, 則彼疑我矣. 疑則害之, 故凶.

小畜의 세상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구삼효가 상구효에 다다르면 비가 내리지 않을 수 없는 형세가 된다. 짙은 구름은 돌이킬 수 없다하여 상구효를 버린다면 함께 비를 내릴 바가 없어진다. 이미 상구효와 함께 비를 내렸다면 그를 적임자로 삼은 것이니, 머물지 않을 수 있겠는가? 乾은 德이 아니면 멈추지 않는다. 구오효와 상구효는 바탕이 陽이지만 뜻은 陰이므로 능히 덕을 숭상하여 함께 건을 실을 수 있다. ‘덕을 숭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덕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구오효와 상구효는 건을 축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덕을 쌓아서 함께 싣는 것이다. 상구효는 陽爻인데도 ‘아내’라고 부르는 것은 이것이 실제로는 陰인 것을 밝힌 것이다. 위에서 아래를 축적하기 때문에 ‘곧다’고 말하고, 乾이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위태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음이면서 양을 이기기 때문에 ‘달이 보름달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군자의 정벌이 아직 交合하기 전에 나온다면 허물이 없다. 그러나 이미 상구효와 함께 비를 내린 뒤에 그를 버리고 떠난다면 그가 나를 의심하게 된다. 의심하면 해치기 때문에 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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