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미국전이 끝난 다음, 베트남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참... 할 말을 잃었다.
패배주의인 것인지 묘한 자신감인 것인지.
"19년에 태국은 미국에 왕창 깨졌는데, 우리는 3-0으로 선방했다. 이제 우리가 포르투갈 잡고, 미국이 네덜란드 잡은 다음에 우리가 네덜란드한테 비기면 된다!"는 류의 댓글들이 아주 크게 호응을 얻고 있었다.
이게 그냥 희망사항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는 게 내 웃음벨이었다.
피파랭킹 1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비벼볼 만하다는 건가? 역사적인 본선 첫 경기에서 공격 전술 자체를 포기해버린 팀이? 심지어 내려앉은 것 치고는 수비 집중력도 별로였는데?
그런데 오늘 한국 대 콜롬비아 경기를 보고, 베트남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접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하... 나름 한국 여자 축구의 황금기였던 15년 이후에 시간이 멈췄구나, 현재 17위인 피파 랭킹은 18위/19위와의 랭킹 포인트 차이가 많이 나서 그냥저냥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일 뿐이었구나.
아무튼 이번에도 내 나름 포르투갈과 베트남의 경기를 프리뷰(라고 쓰고 역시나 망상 똥글)를 해보려고 한다.
1. 저번 미국전은 정말로 '잘 지는 것'이 목표였는지, 공격 전술이라는 것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선수비-후수비. 어쩌다 기회가 보이면 공격수 재량에 맡기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진짜로 3패하고 돌아갈 마음가짐으로 온 게 아니라면 베트남은 이번 포르투갈 전에서는 공격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2. 필리핀이 그것을 증명했다. 스위스전에서도 확실히 열세였지만 충분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페널티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페널티킥 내준 것 아니었으면 스위스도 꽤나 고전했을 듯한 모습. 그리고 이번 뉴질랜드전 역시도 그러했다. 공격을 해야 찬스 메이킹을 하든지,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거나 전술적으로 움츠러들게 만들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3. 분명 선수비-후역습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후역습을 반쯤 포기한 이유는 Thanh Nhã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전이 열리기 전에 부상 소식이 있던 그녀는 며칠 전 회복을 했다는 뉴스가 떴다. 베트남은 좋은 공격 옵션이 돌아온 만큼, 포르투갈 전에서는 적극적인 공격 루트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5-3-2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4. 포르투갈은 네덜란드전에서, 본인들의 장기인 전방 압박을 선보였다. 라인을 꽤나 올리면서 어느 정도 효과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수비에 있어서는 확실히 부족한 모습이 있었다. 일대일에서는 스피드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으나, 카운터어택을 당할 때는 상당히 자주 공간을 내주면서 네덜란드의 공격수들을 놓치는 모습이 보였다. 포르투갈 수비진이 만만하지는 않아도 베트남은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5. 포르투갈의 적극적인 압박에 대비해 수비를 내리고, 뒤로 열리는 공간을 한 번에 열어야 하는데 이걸 또 Huỳnh Như의 개인 기량에 맡길 생각이라면 감독은 빨리 지휘봉을 내려놓는 게 좋을 것이다. 대표팀 최고의 공격수이자 유일한 해외파이지만 그녀가 뛰고 있는 리그는 바로 맞상대인 포르투갈이다. 심지어 포르투갈 대표팀 수비진은 세비야에서 뛰는 Diana Gomes, 파르마에서 뛰는 Joana Marchão를 제외하면(스포르팅에서 뛰는 Ana Borges를 수비수로 분류한다면 그녀도 포함), 전부 벤피카 출신인데 저번 시즌 Huỳnh Như는 두 차례 벤피카와의 맞대결에서 전부 73분에 교체 투입이 되었고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Huỳnh Như 포르투갈 리그 22-23시즌 18경기 5골 2도움)
6. 포르투갈의 투톱인 '투실바(16 Diana Silva와 10 Jessica Silva)'는 전방 압박부터 개인 기량과 스피드로 수비진을 깰 능력이 충분히 있다. 네덜란드 수비진은 효율적으로 잘 버텼기에 1-0 승리가 가능했으나 베트남 수비진은 집중력을 잃으면 그냥 자동문이 될 수도.
7. 포르투갈은 전체적으로 몸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특히 중원 싸움에서 거친 몸싸움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베트남 입장에서는 부상만 조심한다면 괜찮은 세트피스 상황을 많이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네덜란드전에서 포르투갈은 '혹시 세트피스 수비 훈련이 없었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 장면을 몇 차례 보여주었다. 물론, 네덜란드하고 베트남은 큰 차이가 있지만...
1. 포르투갈은 일단 방심을 안 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유럽 최하위급이지만 베트남 정도야 뭐~, 베트남 최고 스타 플레이어가 우리 리그에서 뛴다며?' 등의 생각만 안 하면 된다.
2. 포르투갈은 확실히 유럽에서 놓고 보면 엄청 뒤쳐지는 팀인 것은 확실하다, 남자 대표팀과는 다르게. 하지만 작년 유럽 플레이오프랑 올해 카메룬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바득바득 올라온 것을 생각하면 베트남이 쉽게 '가능성'을 논할 만한 팀은 아니다.
3. Neto 감독은 전형적인 4-4-2 다이아몬드 공격 전술을 선호하지만, 이게 공미 자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4-3-3이 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네덜란드전과 다르게 베트남전에서는 공격에 더욱 무게를 실을 것이라 생각한다. 포르투갈 입장에서도, 16강은 못 가고 귀국한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본선 1승은 베트남에게 무조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4.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보여준 모습으로 판단하면, 포르투갈은 적극적인 몸싸움, 라인을 올려서 강한 압박, 공격수를 추가로 배치해 적극적으로 수비진을 휘젓기만 해도 베트남을 실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포워드처럼 움직일 수 있는 Nazareth가 네덜란드전과 다르게 선발로 출장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5. 베트남이 완전히 내려 앉은 채로, 뽕 맞은 것마냥 극상의 수비조직력을 보여준다면 포르투갈은 장신 공격수 옵션을 꺼낼 수 있다. 벤치에 172cm의 장신 공격수 Carolina Mendes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점은 Neto 감독이 그 점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수비진이 168cm의 Lương Thị Thu Thương을 제외하고는 전부 160cm 언저리라는 점을 감안하면(주전 골키퍼인 Trần Thị Kim Thanh도 165cm다), '공중전'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카드라고 볼 수 있다.
6. 만약 베트남을 상대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선발 투톱을 Carolina Mendes(172cm)와 Jéssica Silva(170cm)로 구성해 공중볼 경합을 유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7. 미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몸싸움을 크게 유도하지 않았음에도 베트남이 자연스럽게 밀려버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포르투갈이 미드필드진에서부터 강하게 몸싸움을 걸면 스쿼드가 약한 베트남으로써는 굉장히 고전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주심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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