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롱선사에 대한 정보글이 많기는 하지만,
내 나름대로 몇 가지 정보를 덧붙여보고자 글을 쓴다.
냐짱이라는 도시가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니고,
관광보다는 휴양에 더 적합한 곳이다보니 공과 시간을 들여 찾아갈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그나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롱선사와 포나가르 탑, 냐짱 대성당 그리고 덤 재래시장 정도이다.
그래서 몇 개 안 되는 이 주요 관광 포인트들을, 간단하게 다루려고 했는데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가, 처가에 와서도 게으름을 피우고 이제서야 자판을 잡는다.
워낙 정보글, 후기글들이 많다보니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보다는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 딱 4개만 짧게 치고 끝내는 게 나을 듯하다.
Point 1. 절의 이름
아직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이나 몇몇 자료들에는 롱선사의 이름이 한자로 龍山寺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식 한자 발음으로 龍이 Long으로 발음되고,
여기의 용 장식이 어쩌고 하는 소개글들도 널리 퍼져있다보니 그런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의 한자어처럼 한자어를 읽는 Hán-Việt 발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원래 용이라는 존재가 동아시아의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의 수호자처럼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입구의 현판을 한 번만 올려다보면 바로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이 모습이 절로 들어갈 때 볼 수 있는 모습인데,
나오는 방향으로 '칙사융산사(勅賜隆山寺)'라는 현판을 볼 수 있다.
'칙사'라는 말은 황제가 내렸다는 말이다. 전근대의 베트남은 내부로는 황제,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조공-책봉을 통한 제후왕을 표방하는 외왕내제(外王內帝)의 국가였다.
아무튼 바오다이 황제가 1936년이었나? 그때 현판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한자로 된 조칙을 본 게 아니라 절의 내력만 확인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현판에 따르면 '용산'이 아니라 '융산'임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불상이 우뚝 솟아있는 언덕 위에 원래 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절 안으로 조금만 들어오면 대웅전 뒤로 우뚝 솟은 하얀색 좌불상을 볼 수 있는데, 이 절은 원래 저 위치에 있었다.
1900년에 큰 태풍으로 절이 박살이 난 덕분에 다시 이 위치에 지었다는 건 워낙 널리 알려저서 방문자들 모두가 알고 있더라.
Point 2. 와불상
정전 뒷편에서 시작되는 계단.
절의 공식적인 자료에 따르면 하얀색 좌불상이 있는 곳까지 계단은 총 193개라고 한다.
올라가다보면 숨차고 짜증나서 내가 직접 세어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44번째 계단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있는데, 여기에 와불이 하나 모셔져 있다.
베트남에도 상당히 곳곳에 이런 와불들이 있다.
여기에 있는 이 와불도 상당히 큰 와불에 속하는데,
내가 전에 가이드일을 막 시작했을 때 찾은 자료에서는 이 와불이 태국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래에 태국어가 써있는 거라고.
재료가 되는 화강암이 태국에서 들어왔다 그랬나?
이번에 글을 쓰는 김에 그 자료를 다시 찾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왔다.
그래서 정말 이 불상이 태국과 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 불상의 공식 명칭은 여기에 붙어 있다. '열반에 든 부처님'이다.
Kim Thân이란 금신(金身), 즉 부처의 몸을 의미한다.
원래 불교에서 金이라는 단어는 전부 부처와 관련이 있는데, 베트남의 불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열반에 든 부처님 뒤로는 49명의 제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조각이 새겨져있다.
워낙 롱선사 꼭대기에 있는 좌불이 유명해서 그렇지,
이 절은 좌불과 더불어 이 와불 역시도 유명하다.
Point 3.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큰 야외 좌불상
아직까지 기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베트남 전역에서 야외에 있는 좌불상 중에서 제일 큰 것으로 기록을 세운 롱선사의 좌불상.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일단 무덥고 짜증이 난다.
아래에서 오토바이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고 장사하는 쎄 옴(xe ôm) 아저씨들이 있기는 하지만,
독실한 불교신자가 아니면 사실 별 감흥이 없기는 하다.
불상이 있는 자리가 193번째 계단이라고 하는데,
세본 바 없다. 절의 공식적인 기록이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연화대좌에는 이렇게 불길에 감싸진 스님들의 모습이 있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종교 역시 국가와 당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에,
국가와 당의 퍼포먼스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베트남 불교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1963년 불교법난'이 중요하다.
당시 천주교를 바탕으로 한 지주와 자본가 세력의 옹호를 받고, 본인도 그런 존재였던 남베트남 정부의 응오 딘 지엠(Ngô Đình Diệm)은 지속적으로 다른 종교를 차별했고, 사실상 반 남베트남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불교는 대대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유혈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1963년의 불교 탄압은 심각했고, 이에 저항해서 당시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을 통해 저항을 했던 틱 꽝 득(Thích Quảng Đức)의 이야기가 외신기자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큰 이슈가 된다.
틱 꽝 득 스님의 사례가 워낙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어서(해당 기자의 보도는 퓰리쳐 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틱 꽝 득 스님의 사례만 회자되지만, 당시 남베트남 정부에 저항해 소신공양한 승려들은 여럿 더 있다.
이곳 연화대좌에 새겨진 스님들은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불교 탄압에 저항했다는 상징성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남베트남 정부'에 저항했기 때문에 베트남의 불교계에서는 크게 추앙받는 것이다.
뒤로 돌아가면 이런 공간도 있다.
Point 4. 틱 꽝 득 스님이랑 이 절은 무슨 관계?
일단 절의 정문에서, 길 건너편을 보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어떤 스님의 모습.
그렇다.
이 인물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틱 꽝 득(Thích Quảng Đức) 스님이다. 하얀색 입상 앞쪽에는 나무랑 색깔이 비슷하지만, 동으로 만든 소신공양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도 있다.
이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을 틱 꽝 득 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다른 가이드 분들은 어떻게 설명하시는지 모르겠는데,
틱 꽝 득 스님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끝내지 않고, 이 절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을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박고 시작하자면,
"없다. 전혀."
약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1)
우선, 틱 꽝 득 스님은 Khánh Hòa성 출생이다. 냐짱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Ninh Hòa라는 지역이 있는데, 여기에서 또 북쪽으로 해안을 타고 올라가면 있는 Vạn Khánh이라는 지역, 여기가 바로 틱 꽝 득 스님의 출생지이다.
냐짱의 침향탑 기준으로 해서, 차량으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이다.
2)
그렇다면 이 절에서 뭔가를 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같은 성 일대인데?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Nha Trang 일대로 내려온 적이 없다.
8살 무렵에 고향 지역에서 출가를 해서 Ninh Hòa 일대에서 수행을 했고, Sài Gòn에서 주로 활동한 게 행적의 대부분이다.
이 지역에서 법회나 이런 걸 한 기록? 전혀 없다. 청소년 시절에 고향 일대에서 수행하고 떠난 게 Khánh Hòa에서의 행적 전부다.
3)
베트남어를 좀 아시는 분들 중에서는 틱 꽝 득 스님이 8살 때 출가를 한 절이 롱선사(Long Sơn Tự)라는 기록을 보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전에 그걸 보고 행장을 열심히 뒤져봤는데,
틱 꽝 득 스님의 행장에 등장하는 롱선사의 주지들과 냐짱 롱선사 역대 주지들의 법명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카잉화 성 불교회의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틱 꽝 득 스님의 고향인 Vạn Khánh에 롱선사라는 다른 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
그럼 왜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저런 동상과 석상이 세워져 있느냐?
이 절이 Khánh Hòa성 불교의 중심 절이기 때문이다.
카잉화 성 불교회에서, 카잉화 성의 대표적인 고승이자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승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어서 카잉화 성을 대표하는 절에 동상과 석상을 세운 것일 뿐.
생각해보면 그렇다.
애시당초 뭔가 틱 꽝 득 스님과 관련이 있는 절이었다면 절 곳곳에 관련된 포인트들이 부각되어 있었을 것이고
(앉아서 법회를 했던 곳이나, 아니면 머물렀던 방 같은 것들을 보존하고 관광 포인트로 만들었어야 정상이다)
석상과 동상을 절 반대편에 저런 식으로 덩그러니 둘 리가 없다.
정리하자면, 이 카잉화 성을 대표하는 베트남 최고의 고승을 기념하기 위해서
카잉화 성을 대표하는 절에다가 그냥 세운 것일 뿐, 둘의 접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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