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회수가 늘었나 했더니, 한국에서도 기사화가 된 모양이다.
사실 분노의 포인트는 인터뷰 자체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사용한 워딩 때문이고,
이 인터뷰를 놓고 수영선수니 전 미스 베트남이니 하는 사람들이 설왕설래하는 건 자기들 얼굴에 침뱉기 그 이상도 아니어서 패스했다.
한국은 그 부분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베트남 내에서는 이번 2023 미스 월드 베트남인 Ý Nhi의 문제와는 별개로 취급하더라.
사실 '남자친구 공개' + '사용한 워딩에서의 문제' 때문에 부각이 되어서 그렇지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가거나 일부 사람들끼리 적당히 논쟁하는 정도에 불과한 떡밥이었을텐데.
아무튼 이미 제대로 밉보인 상태이고, 어디 물어뜯을 게 없나 주시하던 베트남 네티즌들에게 또 하나가 포착되었다.
바로 Winner, 1st runner up, 2nd runner up과 함께하는 인터뷰였다.
MC가 Bình Định 출신인 Ý Nhi에게 Bình Định성의 유명한 인물을 3명 대보세요 하는 퀴즈를 냈다.
한국에서도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퀴즈 내고 푸는 거 자주 하니까 익숙하다.
(당장만 해도 최근에 언에듀의 '친일파/독립운동가' 맞추기 퀴즈가 기억난다)
그러자 먼저 나온 답이 '저', '한 막 뜨(Hàn Mặc Tử) 시인', '꽝 쭝(Quang Trung) 왕'이다.
해당 인터뷰의 영상이다.
이 인터뷰로 인해 난리가 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포인트는 'Ý Nhi'를 비난하는 건 모두 똑같은데,
비난하는 이유(포인트)가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인터뷰가 큰 문제라면 포인트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혹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냥 'Ý Nhi의 입이 문제'라는 점과 ' 재수가 없다, 겸손하지 못하다'는 포인트만 일치하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드러내며 공격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1) 호치민 주석의 5가지 가르침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군. (5번에 '겸손'이 들어가 있음)
2) 꽝 쭝보다 자신을 먼저 이야기할 정도로 스스로의 업적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나보군. 건방지네. (꽝 쭝 왕은 2013년 베트남 문체부에서 선정한 '베트남의 대표적인 민족영웅 14인' 중 하나)
3) 둘 다 Bình Định성 사람이 아닌데 끼워넣네?
그런데 'Ý Nhi' 더 나아가 '미인대회 우승자'들의 지식과 교양 부족을 지적하기 위해 꺼내든 3번에서 서로 간에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일단, 사람들이 퍼나르는 자료에서는 모두 '빙딩성의 유명한 세 사람[3 người nổi tiếng của Bình Định]'이라는 식으로 많이 돌아다니지만 인터뷰를 제대로 들어보면 '빙딩성이 고향인(빙딩성에서 태어난) 유명인 세 사람[3 người nổi tiếng quê ở Bình Định]'이다.
베트남인들의 청해력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엿을 먹이고 싶어서 일부러 워딩을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 나에게 '산청 출신의 유명한 사람'을 대보라고 그러면 골치가 아플 것 같다.
박항서 감독님이야 생초 출신인 걸로 기억하니까 당당하게 바로 댈 수 있을 것 같은데, 허준은 일단 출생지가 산청이 아니고 남명 조식 선생님이 어디 출생이셨지...? 벌써부터 골이 아프다.
그래서 보통 이런 질문, 심지어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질문이니까 농담 삼아서 충분히 '자신'을 지칭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식 자랑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시인 한 막 뜨'는 꽝빙(Quảng Bình) 출신이라는 것과 '꽝 쭝 왕'이 '응에안(Nghệ An)' 출신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꽝 쭝 왕 같은 경우는 네티즌들끼리 서로 싸우는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위의 사진처럼 Ý Nhi가 타지 출신의 역사적 영웅들을 Bình Định성 사람으로 둔갑시켰다는 비난의 포스팅이 등장.
지들끼리 꽝 쭝 왕이 응에안 출신이다, 아니다로 서로 틀렸네 맞네 다투기 시작했다.
꽝 쭝 왕은 베트남 역사에서 '떠이썬 봉기(Khởi nghĩa Tây Sơn)'를 통해 응우옌 주에 대항했던 '서산삼걸(西山三傑, Tây Sơn Tam Kiệt)' 형제의 둘째이자, 응우옌 훼(Nguyễn Huệ)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역사적 인물이다.
근대에는 떠이썬 운동과 봉기 이후 첫째인 응우옌 냑(Nguyễn Nhạc)이 태덕제(泰德帝, Thái Đức Đế)로 즉위하고 이후 형제간의 갈등을 통해 제위를 이어받아 '광중황제(光中皇帝, Quang Trung Hoàng đế)'로 즉위한 이 일련의 흐름을 전부 '왕조'로 인정하여 '떠이선 왕조' 혹은 '서산왕조'라고 부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원래 성은 호(Hồ)이고, 이들의 선대가 '응에안(Nghệ An)' 출신으로 그곳에서 이주를 한 사람들이라는 기록 때문에 이 서산삼걸 형제를 모두 응에안에서 태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생긴 문제이다.
서산삼걸의 출생에 관한 기록 자체는 불분명하지만, 빙딩성에서 전해지는 구전 그리고 바로 윗대가 빙딩성 An Nhơn 지역에 정착한 기록들로 인해 이들의 출생지는 빙딩으로 거의 확정적이다.
자기들끼리도 똑바로 이야기 못하는 걸 가지고 남에게 지적하는 꼴이 우스워지기 시작하니까,
대체로 '입이 문제'라고만 지적을 하고 역사적 지식 부분은 조용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맑스-레닌주의 사관으로 인해 전근대-봉건시대의 역사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베트남인데다가,
한국보다 더 심한 '암기과목'이 되어 버린 역사 과목을 멀리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이런 걸 지적하고 있는 것도 웃긴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이 짜치는 건, 같은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1st runner up(Á Hậu 1, 미스코리아의 善에 해당)의 인터뷰가 더 큰 문제인데, 이게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언급-공유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진선미'에서 '선'에 해당하는 Á Hậu 1을 차지한 이 친구의 이름은 'Đào Thị Hiền'이다.
이 친구는 2022년 Miss Tourism Vietnam(Hoa hậu Du lịch Việt Nam)이라는 국제대회 참가가 애매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회에서 Top5 안에 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녀의 친언니이다. 친언니인 Đào Thị Hà는 2016년 미스 베트남(Hoa Hậu Việt Nam)에서 Top5에, 2019년 미스 유니버스 베트남(Hoa Hậu Hoàn vũ Việt Nam)에서 Top5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2022년 Top5를 기록했을 때부터 '하(Hà)의 동생'이라는 것으로 나름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자매가 나란히 미인대회에 나와서 기록을 세웠으니)
그리고 언니와 동생 모두 응에안 성 출신이다.
그래서 이 친구와의 인터뷰에서 MC는 응에안 성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 5명을 대보라고 퀴즈를 냈다.
확실히 베트남 역사에서 응에안은 손에 꼽힐 정도로 역사적인 인물도 많이 냈고, 역사적 사건도 많이 일어났고...
사실 '유명한 인물'이라고 해서 역사적 인물만 꼽을 필요도 없기 때문에 꼽을 사람이 많아서 5명이나 대라고 시킨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이 나오면 베트남 내에서는 가장 먼저 튀어나와야 하는 답이 '호 아저씨[Bác Hồ]', 즉 호치민 주석[Chủ Tịch Hồ Chí Minh]이다.
그런데 이 응에안 출신의 여성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흐엉 짬(Hương Tràm)이라는, 나는 잘 모르겠는 여성 가수의 이름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본인[Em]'을 이야기했고, 바로 이어서 자신의 친언니인 Đào Thị Hà를 언급한 다음에
한참을 고민했다, 대충 8초 정도. 옆에 있던 Ý Nhi가 뭐라고 언질을 주기까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겨우 나온 Bác Hồ. 마지막 인물도 한참을 고민한 끝에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인 판 보이 쩌우(Phan Bôi Châu)가 나왔다.
이정도면 사실 Ý Nhi의 인터뷰는 진작에 묻혀버리고, 이 인터뷰가 난리가 나야 정상인데
Ý Nhi의 인터뷰만 계속 부각이 된 채 인터넷에서 계속 재생산 중이다.
그것도 자기들끼리도 틀려서 서로 지적하는 상황으로 대충 마무리 중이고.
원래 베트남 사람한테는 뭐 잘못 보이면 그냥 가루가 된다.
잘못이 다수에게 있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들어보니 Ý Nhi는 장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복한 집안이라던데 알아서 잘 하겠지.
그저 베트남 네티즌들 짜치는 게 여전하다는 생각만 드는 이번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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