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기저기서 들리는 노래 중에
엿처럼 늘어지는 서정적 멜로디에 트로트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노래들이 있다.
바로 이런 류의 노래들인데,
이 장르를 '볼레로(Bolero)'라고 부른다.
요즘은 장모님이 우리 하린이를 재우는 데 이 음악을 틀어놔서 나도 지겹도록 듣고 있는 중이다.

내 장인어른 장모님의 세대, 그리고 그 윗세대가 좋아하는 베트남 음악 장르로
특히 베트남 시골을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다.
저녁에 노래방 기기를 틀어 놓고, 술에 살짝 꼴은 목소리로 이 장르의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있으면
가서 노래방 기기는 물론이고, 듣고 있는 내 고막도 부셔버리고 싶다는 게 문제지만.
장르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 전통의 장르는 아니다.
이 장르는 19세기 동부 쿠바에서 시작된 장르로, 1950년대 베트남에 유입되었다.
베트남어 위키피디아에는 이 장르가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쿠바를 거쳐 베트남에 들어왔다'고 되어 있지만,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는 '이 장르는 동명의 오래된 스페인 춤곡과 관련이 없다'고 되어 있다.
스페인 춤곡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다른 자료들도 있고, 또 아니라는 자료들도 혼재되어 있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베트남의 볼레로는, '볼레로'라는 장르의 역사에서 있어서 한 축에 자리할 정도로 꽤 성장한 장르이다.
1950년대 유입된 이래로 베트남 남부지방 민요의 요소 등과 결합해 베트남 특유의 색깔로 재창조되기 시작했다.
영문판 위키에는 베트남 볼레로의 역사를 1930년대로 잡고 있지만,
아마도 이는 현재 베트남 내에서 1930년대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Nhạc vàng이라 불리는, 서구 음악 여러 장르의 영향을 받은 서구풍 음악과 볼레로 장르를 혼동해서 쓰기 때문에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멜로디는 단순하고, 박자는 느리며, 부르기 쉬운 형태를 갖추고 있고
여기에 붙이는 가사들 역시도 쉽게 따라 부르고 평범하며, 일상적이고 서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쉽게 전파가 되었다.
베트남의 "신음악운동"으로 인해 전통음악의 곡조 대신에 서양음악 멜로디를 사용하는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볼레로 역시 크게 인기를 얻었고, 1960~197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1975년 베트남이 통일이 되면서 남부지방 및 서구적 색채가 많이 지워진다.
1979년 "정치 가요(ca khúc chính trị)"라 불리는 음악 스타일이 등장하여, 정부가 이에 따라 음악을 만들게 하면서 볼레로 역시 본래의 색깔에서 많이 벗어난 형태로 바뀐다.
최근에 볼레로가 다시 뜨고 있는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많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레로의 멜로디와 박자를 사용한 음악들이 나오면서부터 볼레로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워낙 볼레로가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종일 실시간 라이브를 하는 채널들이 수두룩하다.

또 많은 사람들이 밤에 잠이 안 올 때 볼레로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는 음악 리스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베트남 소식&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정보] 베트남의 대표적인 술 (1) | 2023.06.25 |
---|---|
냐짱(나트랑)의 대표적인 재래 시장, 덤 시장 (0) | 2023.06.19 |
베트남의 여권 파워는 어떨까? (0) | 2023.06.17 |
일요일 오전 닥락성에서 일어난 총격전, 공안습격사건에 대해서 (3) | 2023.06.12 |
이번 미쉐린 가이드 발표에 대한 베트남 반응을 보며 (9)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