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23 아시안컵. 나에게는 꽤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 대회다. 이 대회를 계기로 베트남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베트남에 눌러앉아 가정까지 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엔 베트남 축구를 일부러 안 봤다. 당연히 이번 U23 조별 예선도 패스했다. (어차피 예선 탈락하면 볼 필요도 없으니까.)
내가 베트남 축구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 언론의 과도한 김상식 감독 띄우기' 때문이다.
그래도 8강 진출했다고 하니 나도 처음 U23 베트남전을 보던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맥도날드 주문하고, 어묵탕도 끓여서 맥주를 곁들이며 아내랑 하린이랑 같이 시청했다.
📺 한국 언론만 보면 이미 박항서 넘은 줄
현지 분위기는 "오, 생각보다 잘하네?" 정도의 적당한 칭찬, 팬들도 열에 한두 명 정도 김상식 감독을 언급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 포털 기사만 보면 김상식 감독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서 기적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마치 박항서 감독의 아성을 이미 뛰어넘은 듯한 뉘앙스랄까. 😒 페북만 열었다 하면 내 피드에 박항서 감독 사진이 도배되던 시절과 확연히 온도 차이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성과는 괜찮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과의 원인이 감독의 전술적 역량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운이 억세게 좋은 건지 모호할 때가 많다. 사실 베트남은 이미 박항서 감독 시절 이런 영광을 충분히 맛봤기에 예전만큼의 감흥은 아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 이번 성과는 '실력보다는 운'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 김상식 감독의 전술 vs 베트남 선수의 고질병
초창기부터 지켜본 바로는, 김상식 감독이 추구하는 색깔은 분명히 있다.
완전 초창기 몇 경기 동안에는 뭘 하려고 했는지 도무지 몰랐는데, 그래도 A대표팀부터 청소년대표팀까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흐름은 있는 것 같다.
- 기본적으로 선수비 후역습.
- 수비 시 진영을 유지하며 공간 내주지 않기.
- 의미 없는 롱볼(뻥축구)을 줄이고 턴오버 방지.
- 후방에서 U자 빌드업을 하더라도 짧게 썰어가며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접근 후 타겟맨에게 연결.
대략 이 정도가 내가 느낀 점이다.
물론, 축구를 보는 눈이 개쒯-이라서 내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아무튼 A대표팀이든 U23이든 현재 베트남 스쿼드 수준에 맞는 현실적인 플랜을 짜고 있는 건 맞다. 문제는 '수행 능력'이다.
이건 베트남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A에서 D라는 결과를 얻으려면 B와 C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고과정이 부족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A에서 D를 도출하냐며 아무것도 안 하거나, 지시를 해도 금세 까먹고 자기들 마음대로 진행을 한다. 그러다 운 좋게 결과가 나오면? 그게 본인 능력과 실력 덕분인 줄 알고 굳어버린다. 딱 거기서 성장이 멈추는 거다.
이번 U23 대표팀에서도 그 고질병은 도드라져 보였다.
- 수비 숫자가 월등히 많은데도 상대 공격수에게 태평양 같은 공간을 내준다.
- 아무 의미 없는 슈팅으로 굳이굳이 힘들게 공격을 함
- 공격 숫자가 많음에도 수비수랑 딱 붙어서 '공 줘' 하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
등등. 아직도 안 고쳐지고 있는 게 너무 많이 보인다.
이런 점들 때문에 기본적으로 박항서 감독 시절의 대표팀은 꽝 하이 같은 색깔있는 플레이메이커 말고는 졸라 뛰어 다니는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김상식 감독도 중간 과정에 오류가 좀 있어도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크게 개입하지는 않는 것 같다.
🇻🇳 vs 🇦🇪 베트남 대 UAE 전 경기 총평
지금까지 베트남이 이긴 경기들을 복기해 보면 패턴이 비슷하다. 베트남이 압도했다기보다, 상대가 베트남보다 더 동기부여가 없거나 나사가 빠져 있었다.
그냥 베트남은 평소대로 초반에 정줄 좀 놓다가 한소리 듣고 정신차리기를 반복하며, 잔실수도 많이 했는데, 상대가 승리를 숟가락으로 떠먹여 준 느낌?
그런데 최근에는 베트남 선수들이 "우리가 이기는 건 당연해"라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분위기까지 생기는 느낌. 그래서 그냥 쉽게 가도 되는 경기가 마지막까지 드라마 연출이 되는 듯
오늘 UAE 전도 마찬가지. 골 넣은 직후부터 베트남 선수들의 겉멋 든 플레이와 방심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길게 끌 경기가 아니었다. 연장 3:2... 베트남이 일부러 드라마를 쓰려고 꾸민 수준
UAE는 도대체 뭘 하러 온 걸까? 🤔 무슨 옆 동네 마실 나오듯 경기를 하네. 집중력은 제로에 가깝고 거의 놀러 나온 수준으로 보였다.
바로 바다 건너편에 전쟁 날 것 같아서 심란한 건가? 아니면 경기 끝나고 아부다비딱딱강정이라도 먹으러 갈 생각인지?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이번 경기는 판정도 베트남 쪽에 꽤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 베트남 축구의 위기, 그리고 김상식의 미래
베트남 축구를 2017년부터 봐온,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런 내 식견으로는 지금이 딱 '위태한 과도기'다.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성과(박항서 매직)를 이미 맛봤고, 그때부터 시작된 저력이 있으니 어찌어찌 비스무리한 결과는 계속 나온다. 하지만 그 성과에 취해 '과정'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과정부터 챙기러 들어온 감독도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방향을 틀지 못하는 상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러다 무너질 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김상식 감독의 진짜 과제는 당장의 승리보다는 '베트남이 할 수 있는 축구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감독도 그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 성과가 잘 나오고 있기 때문에 과정에 집중할 수도 없어 보인다.
문제는 한국 언론의 과도한 띄우기가 오히려 독이 될까 걱정이라는 것. 어느 연예인이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 "과도하게 띄우는 건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기 위함"이라고.
지금처럼 우당탕탕을 해서라도 결과가 나는데, 궁극적인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김상식 감독은 올해 안에 챙길 수 있는 커리어와 결과물 싹 다 챙기고, 박수 칠 때 떠나서 스텝업 했으면 좋겠다.
올해가 베트남 축구의 분수령이다. 여기서 살짝만 삐끗하면, "김상식 감독도 결국 선수빨로 얻은 결과였고 운이 좋은 감독이었다"는 소리 100% 나온다. 지금이 고점일 때 매도하는 게 상책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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