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일기

연초에 봤던 기이한(?) 면접 이야기

베트남10선비 2024. 1. 1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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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처가에서 있었던 일 대충 요약하면서,
한 가지 이야기는 키핑을 해두겠다는 이야기를 남겼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그랬던 이유는 이야기가 잘 풀리면 지금까지의 삶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될 것이었고,
아니면 잘 안 풀리면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되었기 때문.
그런데 잘 안 풀린 정도가 아니라, 연초부터 꼬인 매듭이 생긴 터라 한 번 적당히 끄적이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29일

아내와 내가 비자 연장 & 하린이 독감 2차 접종을 위해 부온마투옷에 갔을 때로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연말연초부터 외국인 남성 하나가 아내와 함께 비자를 연장하겠답시고 어슬렁거리는 폼을 보니,
친절한 담당 공안이 백수임을 감지했던 모양이다.
상담중인 아내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서, 아내는 현재 쉬고 있고 직장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풀악셀을 당기며
아는 외국어센터가 있는데, 여기서 한국어 원어민 강사를 구한다면서 해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
내가 잠깐 멈칫 하는 사이에, 냅다 센터의 아는 사람에게 잘로 영상통화를 걸어서 나를 소개했다.
 
그러더니 센터 쪽에서 아내와 대화를 좀 나누고,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언을 남겼다.
이미 우리의 일정은 비자 신청 → 하린이 예방 접종으로 계획되어있었으므로,
접종을 마치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접종 대기가 생각보다 길어졌고, 그로 인해 접종 후 예후 관찰 시간 20~30분까지 지나고 나면 점심시간이 될 듯하여
센터에 연락을 해서 점심 늦게 가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29일 당일은 11:30에 센터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내가 면접 볼 마음이 있냐'고 묻는 거였다. 그걸 이제와서?
그래서 솔직히 너무 갑작스럽고 해서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다음에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1월 6일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4일에 여권을 찾으러 갈 예정이어서, 1월 3일 오전에 '내일 여권 찾으러 나가는 데 내일 면접 볼 수 있을까?'하고 물었더니
아내랑 연락을 주고 받던 센터의 담당자가 본인이 1월 6일에 센터에 나오기 때문에 6일 토요일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처가집부터 부온마투옷 시내까지 차로 편도 1시간 정도의 거리이며, 왕복 택시비가 대략 70~80만동이 나오다보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육아휴직한다 생각하면서 풀로 개백수 생활을 해온 나에게, 이런 기회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면접을 보러 갔다.
센터와의 연락은 아내랑만 주고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아내도 따라왔고.
 
시내에 있긴 했지만 차도 들어갈 수 없고, 초행자는 골목 입구를 한 번에 발견하기 힘든  요상한 위치에 있던 외국어 센터를 방문했다.
좀 가볍게 생각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한국 회사 면접 본 곳들 중에서 제일 빡셌던 회사와 비슷한 수준의 면접을 보았다, 베트남어로.
 
센터 측에서는 내가 생각 외로 베트남어를 좀 한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워했다. 표현이 살짝 부자연스럽더라도 뜻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에 특히.
아무튼 센터에서는 '베트남인이 가르치는 것처럼, 베트남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요구했다.
게다가 내가 강의 경력이 없기 때문에 1달 정도 다른 베트남인 교사의 조교로 들어가서 교수 방법을 배우고,
센터에서 시범 강의를 해본 다음, ok가 떨어지면 강의를 개설하는 것으로.
특히 EPS-TOPIK 수요가 급증하면서 덩달아서 한국에서 일 할 때 필요한 자연스러운 한국어 같은 강의가 필요했던 터라
내 강의가 어느 정도 올라오게 되면 스피킹 강의를 따로 열면 되고...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당장에라도 내가 하겠다고 하면 바로 조교 실습 일정을 잡는 것으로.
그런데 이 실습이라는 게... 그냥 강의 보조인 게 아니라, 정확히는 내가 그 코스의 수강생 중 하나로 등록을 해서 들어야 하는 것이고 수업 중에 강사가 뭔가를 시키면 돕는 정도? 결국 수강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급여 이야기.
그런데 여기서부터 좀 쎄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도, 여기가 지역이 지역이다보니 급여가 좀 짤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나도 닥락성 급지가 어떤 지 뻔히 알고 있어서 외국인에게도 그렇게 급여가 높지 않겠다고는 예상했다.
게다가 한창 케이무브로 베트남 와서 구직할 때, 당시 업체 대표가 '정 할 거 없으면 한국어 강사 자리 소개해주겠다, 자리 많다'면서 급여가 대략 500달러 선이라고 말을 한 바가 있었다.
나도 그래서 대략 그 정도 생각을 하고 있었고.
 
면접 마무리 단계에서 급여 언급하면서 '너는 얼마를 받고 싶냐'고 묻길래,
나도 이런 일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 다들 얼마 받는지도 모르고.
이런 식으로 답을 했는데, 자꾸 돌아오는 답은 '많이는 못 준다. 그런데 여기가 호치민 시랑 다르게 물가가 비싸지 않아서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 않을 거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걸 '그래서 얼마 줄 거냐고' 막 캐물을 수도 없고 해서, '내가 나 혼자 살면 그냥 결정하겠는데, 아내도 있고 애도 있어서 특히 아내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같이 온 아내에게 전부 토스했다.
그런데 아내랑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내한테 정확히 얼마라고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였다.
아내가 결국 '무경력 강사 첫 월급 얼마 정도 받냐'고 직접적으로 묻자 '8백만동'이라고 답이 나왔다.
길고 긴 면접 중에 급여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한 것은 이 '8백만동'이 처음이었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베트남인 강사와 동일하게 취급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묘하게... 처음 출입국사무소에서 말한 '원어민 강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잘못된 정보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봐도, 한국어 원어민 강사가 아니라 그냥 강사가 필요했던 것 뿐이고
한국인이 센터에 방문했다는 건 홍보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면접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오라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베트남어가 좀 되어서 이야기만 잘 되면 고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얼마를 받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달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하면서 마무리를 짓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굉장히 허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지금 백수 생활인 걸 감안하면 수입이 있기라도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 + 처가에서 가까우므로 처가에서 띠엔과 하린이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 + 한 1년 경력 쌓으면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면서 ok를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엄마 아빠와 어디 이상한 데를 다녀오느라 진이 빠져버린 하린이~


 

1월 7일

답장을 보내기 전에 부온마투옷의 월세와 기타 등등을 좀 조사를 했는데...
아무리 해도 월급을 전부 월세에 꼴아박을 기세였다.
왜냐하면, 외국인이 많은 지역은 Studio, Chung cư mini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현재 우리가 사는 냐짱 방 같은 집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부온마투옷은 아예 방 3개의 고급 아파트 아니면 거의 월세 60만~70만동 짜리의 몸만 뉘일 수 있는 곳, 그것도 아니면 아예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리는 형태뿐이었다.
그나마 합리적 가격에 합리적 공간은 안에 아무런 가구도 없는 말 그대로 비어 있는 집이었다.
 
어찌어찌 부동산들 조사해서 알아보니 집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내가 고민하다가 8백만은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 남편은 500달러를 원해요'라면서 '자세한 건 남편과 협상하세요'하고 내 번호를 남겼다.
 
6일 토요일에 면접을 보고, 6일 오후와 밤까지 이런저런 조사와 고민을 했고, 7일 오전에 아내가 급여 협상 잘로를 남겼다.
그런데 답장은 고사하고, 아예 읽지를 않는 것이다.
 

1월 11일

월요일은 그냥 기다렸는데, 화요일이 되어도 읽을 기미가 없어서 '뭐지? 씹힌 건가?' 하다가 10일 수요일에 아내가 다시 '어떻게 하실 건가요?'하고 잘로를 보냈다.
그런데 이 잘로도 하룻동안 쳐다도 안 보다가 11일 목요일에 뜬금없이 답장을 보냈다.
내용인즉슨, '외국인 고용에 노동허가서나, 기타 등록 등 제반 비용이 들어가서 500달러를 못 준다'
이게 끝이였다. 500달러는 안 되고 얼마 정도까지는 줄 수 있다...도 아니고, '500달러 못 준다'가 끝이었다.
웃긴 건... 난 TT비자라서 노동허가서 면제야......
아무튼 아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럼 센터에서는 우리 남편한테 얼마를 줄 수 있느냐'고 했는데,
뜬금없이, '네 남편은 대학 졸업장 말고 어떤 자격증이 더 있느냐. 영어나 이런 거...' 하길래
어이가 없어서 무시할까 하다가, 예전에 땄지만 지금 기간 만료된 자격증들 이러이러한 거 있고, 가이드 자격증 2개 있고... 해서 그냥 대충 알려주라고 했다.
11일은 그냥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어차피 고용 안 하겠네, 온갖 트집을 잡는 것 보니까'하고 잊어버리기로 했었다.
 

1월 12일

그리고 12일 금요일이 되었다.
요즘 냐짱 기온이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중간중간에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통잠을 못자는 하린이 덕에
에어컨 바람을 정면으로 쐰 나는 냉방병과 감기가 들어버렸고...
 
안 좋은 컨디션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 3개가 계속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는 '또 어떤 새끼가 돈을 빌리라고 하는 거겠지 뭐'하면서 무시를 하고 하던 일을 계속 했는데
세 개의 번호 중 한 번호가 재차 전화를 걸어왔다.
 
그걸 본 아내가 내 전화를 가져가서 받았봤는데 그 외국어 센터 측이었다.
뜬금없이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 목이 전화를 받을 상태도 아니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아내가 대신 받았다.
아니, 전화번호는 진작 알려줬는데 이제와서 나한테 직접 연락을? 굳이?
 
내용은 '500달러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실습을 세 달 해야 하고, 연습 강의 평가를 진행해서 오케이가 되면 3달짜리 책 1권 코스 강의를 개설하며 그때 비로소 지급할 수 있다'는 것.
 
처음에 나는 이걸 흘려 들어서 '왜 면접 때 한 이야기를 또 반복하고 있지?'했는데, 아내가 나보다 더 짜증이 난 표정이어서 재차 아내한테 물어보니 처음에 실습(이라 쓰고 수강 등록하라는 것)을 1달만 요구했었는데, 이걸 3달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는 연락 안 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저쪽에서도 출입국관리사무소 공안이 소개를 해줬기 때문에 그냥 한 번 면접을 본 게 틀림없었다.
애시당초 원어민을 고용할 플랜도 없었으며
고용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급여 협상에서 금액 제시를 아예 안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냥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된 좋은 기회였고,
연말연시에 일종의 액땜을 했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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