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소식&정보

일요일 오전 닥락성에서 일어난 총격전, 공안습격사건에 대해서

베트남10선비 2023. 6. 12. 14:41
반응형

일요일 아침에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닥락성에 관한 소식이 베트남 전역을 강타했다.
어지간하면 뉴스에 잘 안 나오는 지역인데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 한국 쪽에도 기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나도 네이버 블로그에 계속 팔로우업했던 내용들을 티스토리에서 정리를 하려고 가져왔다.
 

일요일 아침 베트남 닥락성의 총격전

오늘 아침 갑자기 닥락성 관련 기사가 베트남 전역을 강타했다. 신원 불상의 한 집단이 끄뀐 현(Huyện C...

blog.naver.com

 

 


 
 

Truy bắt nhóm người dùng súng tấn công 2 trụ sở công an xã ở Đắk Lắk

Bộ Công an vừa phát đi thông tin ban đầu về vụ nhóm người dùng súng tấn công 2 trụ sở công an xã ở H.Cư Kuin (Đắk Lắk) khiến một số cán bộ và người dân tử vong, bị thương.

thanhnien.vn

 

처음에 이런 기사가 뜨고 시끌시끌할 때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이유를 몰랐다.

오히려 단순 우발적인 사고인 줄 알았다.

베트남 닥락성은 원래 사제 총기랑 화약이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고, 마약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보니

그런 것과 관련된 사건인 줄 알았다. 예컨대, 약을 거하게 빨고 사제 총기를 들고 현실 배그, 현실 레데리, 현실 GTA라도 찍으러 간 사건인 줄.

 

이 지역은 사제 화약이랑 총기가 꽤나 많다. 구정 등 폭죽을 터뜨리는 일이 있을 때 공안에 신고되지 않은 폭죽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화약을 쓴 폭죽들이 많아서 야간에 공안들이 단속하러 다니느라 죽을 맛일 정도이다.

그리고 좀 오래된 썰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을 밖에 자유롭게 나가도록 하면 총 맞고 잡혀먹히기 쉽상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처음에 신원 불상의 한 집단이 끄뀐 현(Huyện Cư Kuin)의 경찰서 2개소를 총을 사용해 습격했다는 기사가 떴을 때만 해도 이 워딩이 뜻하는 바를 잘 몰랐다.

신원 불상(chưa xác định danh tính)에 집단(một nhóm)이라고 단정을 지어서 기사를 썼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모른다고 하니 진짜 모르는 줄 알았다.

그래... 모르는 것치고는 사건 발생하자마자 바로 길목 차단하고 바로바로 범인들을 잡고 공개를 하더라니.

 

 

총격 기사가 뜨고 바로 초반에 3명이 잡혔는데,

이렇게 빠르게 일당을 체포할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경찰서가 습격당했다고 했을 때는 좀 많이 당황했다.

습격당한 경찰서는 Xã Ea Tiêu, Xã Ea Ktur인데, 이 지역은 닥락성의 성도인 부온마투옷에 가까운 지역으로 부온마투옷 공항 남쪽에 있는 지역이다.

 

공안의 피해는 간부 사망자 4명, 부상자 2명이다. 현재 구체적인 신원과 보상 등이 전부 공개된 상태.

하지만 현재 나오는 오피셜 기사들에는 다른 추가 피해를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 언론들도 제대로 못 다루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초창기에 공안을 통해 이미 공개가 되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

: 공안 간부 4명 사망, 2명 중상. 인민위원회 및 당위원회 간부 2명 사망, 민간인 2명 사망

 

 

Ea Tiêu Xã인민위원회 주석과 Ea Ktur Xã당위원회 비서가 사망했다.

게다가 Xã Ea Tiêu, Xã Ea Ktur에서 각각 1명씩 총 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종합 사망자 8명, 부상자 2명의 피해를 입혔다.

 

처음에 3명 잡힐 때만해도 그게 다일 줄 알았는데,

자꾸 관련자를 제보해달라고 그러길래 어떻게 누가 관련이 된 줄 알고?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너무 유명한 집단이었다.

이미 범인을 특정하고 있으니 관련자들을 제보하란 소리를 한 것이었다.

 

+

이번에 사망한 일반 공민 중 2000년생이 있다.

 

우리 띠엔이 2000년생인데...ㅠㅠ

U15까지는 축구선수 생활을 했나보다.

아내와 이제 막 2살이 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던 한 가정의 가장인데...

 

 

 

일단 6월 12일 오전 기준으로 22명을 체포한 상태이다.

이들은 민간인 인질도 데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현재까지 2명의 민간인이 구출되었고 다른 1명은 스스로 기회를 보고 탈출했다고 발표되었다.

 

 

이번에 잡힌 범인들 중에 52사단 장상빈 씨의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52사단 맞지?)

한국 아날로그 군복은 이런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다(......)

베트남은 SNS 중독이 한국보다 심해서, 굳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쉽게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다.

 

 

++

 

아내가 공유해준 이미지.

우리 처갓집이 있는 Krông Pắc현의 한 농장에서 발견된 유실물이다.

총기 1정과 실탄, 배낭과 마실 물.

장인어른도 농장 나가실 때 조심하셔야겠네.

 

이번 습격을 주도한 집단

: 데가 중부고원 국가(Nhà nước Đềga/Tổ chức người Đềga Cao Nguyên, Degar Central Highlands)

 

베트남에 대해 통달하신 분들은 이미 다 아는 집단, '데가 중부고원 국가'이다.

공식 기사에서는 제대로 언급하기를 자제하고 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다.

장모님께서도 한 90명 정도가 이번 습격에 동원되었을 거라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 

 

 

베트남에서 서부고원지대(Cao Nguyên Tây Nguyên)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베트남 역사에서도 캄보디아 계통의 소수민족들이 오래 거주하던 곳이다.

최근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달랏도 원래는 '랏'이라고 통칭하는 소수민족들의 터전이었고 자라이(Gia Lai), 닥락(Đắk Lắk), 닥농(Đắk Nông) 등등은 베트남에서 공인된 54개의 소수민족에 포함된 수많은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분류한 체계에 따르면 소수민족의 종류가 몇 가지 되지만 이 지역 거주자들은 캄보디아 계통의 서부고원지대 원주민들을 Người Thượng이라고 통칭한다.

여기에 언급된 Central Highland는 쯔엉선 산맥(Dãy Trường Sơn, 통칭 안남산맥)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닥락, 자라이, 럼동 등지를 일컫는 명칭으로 베트남어론 Tây Nguyên Trung Phần이다.

 

  

 

이번 습격을 주도한 이들은 가운데 코끼리가 그려진, 멕시코 국기 느낌이 나는 깃발을 들고 활동한다.

닥락성 거주민들에게 데가 이야기 툭 던지면 히스토리가 줄줄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의 역사는 꽤 오래된 편이다.

예전에 이 지역 소수민족은 전통 애니미즘, 샤머니즘을 따랐는데,

프랑스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선교를 한 이후부터 상당수가 개신교로 개종을 하였다.

그래서 개신교의 색깔이 굉장히 강한 지역이다.

호치민시에서 이 지역까지 버스를 타고 오면 이상하게도 개신교 교회들이 지도에 많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프랑스 식민시대'라는 호칭 때문에 좀 복잡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사실 서부고원지대의 민족들은 인도차이나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에 협력하여 월맹(越盟, Việt Minh)에 대항하던 세력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CIA의 지원을 받아 훈련한 이후 남베트남과 미국을 지원했는데,

미국이 철수를 하면서 일부는 미국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지로 피난, 망명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통일된 베트남에 의해 크게 탄압을 받았다.

미국 등지로 망명한 이들은 외국에서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해방 단체를 만들어 각종 활동을 전개해간다.

 

1975년 이후부터 이 지역 민족들의 토지와 경제권은 이주해 온 베트남의 다수 민족인 낑족(Dân tộc Kinh)과 베트남 정부에게 넘어갔다. 도이머이 정책 이후에도 소수민족들은 더욱 가난해져갔다.

이렇게 쌓인 불만은 2000년대부터 폭력적인 소요사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데족들의 카페 농장 습격 사건이라든가 각종 시위 등이 이어졌다.

이떄 이러한 집단적 움직임을 이끄는 단체가 콜로라도에서 결성이 되니, 이들이 '데가 중부고원 국가'이다.

이들의 주도로 이후부터 굵직굵직한 소요 사태들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2004년 부활절에 있었던 '시위' 같은 사건들.

 

이 집단이 복음주의 교회를 따르고,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본질은 정치경제적이다.

정치범 석방과 자치권과 관련된 것들. 그리고 베트남 정부에서 가져간 경제권을 지역의 민족들에게 돌려주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문제를 국제화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물론 국제적으로 인정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베트남 내에서는 서부고원지대의 육군 전력을 늘리고, '서부고원지대 안보국(Cục An ninh Tây Nguyên)' 등을 설치하여 특별 관리를 이어오고 있다.

나는 닥락성 육군 전력이 꽤 된다는 걸 알고 캄보디아랑 지속적인 분쟁이 있어서 육군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달랏에 육군 간부를 기르는 육군 학원 같은 건 왜 있나 싶기도 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언제든 반란에 준하는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날 만한 곳이기 때문에 육군 전력을 유지하는 거였다.

그리고 따로 지역을 담당하는 안보국을 설치해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주동자들을 빠르게 색출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지역을 확장해서 검문을 진행중이다.

오늘 오전에 검문과 수색을 우리 처가가 있는 Krông Pắc은 물론이고 Krông Bông 일대까지 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해외에 적을 두고 있는 '소수민족해방단체'들은 전부 이번 '폭력사태'와 자신들은 관련이 없으며 소수민족들의 공익과 자유를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는 입장문을 내고 있다.

 


 
6월 13일 추가.
 
베트남 정부는 대놓고 이야기를 못하지만,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약간 '나만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여기에다 조금 더 정리된 이야기들을 할 필요가 있어서 수정 버튼을 눌렀다.
조금 있다가 네이버에는 따로 글을 파야지.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 침묵>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인 워딩으로 '단체'라든가 '신원 불상'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냥 폭력 사태를 일으킨 불법적인 사람들 정도의 스탠스를 계속 유지중이다.
하지만 모두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왜 잡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수민족인지도.
 
베트남 정부는 이런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식적으로 "국내에 반동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존재를 공인한다? 그럼 뭐다?
 

<SNS에 미쳐있는 베트남인들>

 
SNS 덕분에 정부가 공인된 자료를 뿌리지 않아도,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SNS 관심종자의 수준이 한국보다 월등히 높다보니 페이크 뉴스는 저리가라 할 개소리들이 꽤 퍼지는 모양.
이번에는 아예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등장했다.

 
이 사람이 가짜 정보를 퍼뜨린 것 때문에 벌금을 받았다는 기사가 떴다.
정보의 내용은 모르겠지만 Thông tin Chính phủ의 내용을 가져와서 거기에 가짜 정보를 덧붙이는 식으로 퍼뜨린 모양. 하필 그걸 전체공개를 해서 제대로 걸린 것이다.
지금 돌고 있는 몇 가지 류를 봤는데, 현지에서는 죽은 사람이 엄청 많다더라, 정부가 이 기회에 소수민족을 다 조진다더라 하는 댓글들을 여기저기서 봤다. ㅉㅉ
벌금 그거 먹고 치우는 게 다행이 아닐까.
한국 분들 중에도 카더라를 시전하시는 분들이 좀 계신 것 같던데.
 

<내가 에데어가 짧아가지고...>

 

 
이런 문제에 평소부터 관심이 많은 분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분은 태국에 있는 걸로 아는데,
데가 소식들 간간이 전하는 정도? 였던 걸로 아는데 지금 하루에 2개 정도는 계속 뉴스를 뽑아내고 있다.
내가 에데어가 짧아가지고 인사말도 겨우 아는데... 사전 써도 99%의 내용을 이해하질 못한다.
하...
 
오늘 보니까 이런 영상도 올라왔던데.
 

 
이 정도면 처음부터 잡힐 걸 각오하고 움직인 거 맞지?
제목에서 yuăn이라는 것은 베트남의 주민족인 Kinh을 가리키는 에데어이다.
ksung blăh라는 단어(?) 에데어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뉴스 전하는 부분에서 본 거 같은데...
 

<이번 습격의 주된 원인으로 의심되는 것>

 
종종 미친 짓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FLURO에서 데가로 전환하면서는 공식적으로는 '평화적 방법'을 슬로건으로 걸었기 때문에(정확히는 이들의 뒤에 있는 '재단'이 내세운 것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 잠잠하다 했는데 갑자기 전조도 없이 이런 사태가 벌어지다니.
그런데 닥락성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원인으로 의심하는 것들이 있었다.
왜 뜬금없이 총을 들고 나와서 인민위원회를 습격한 것일까?
 
아,
말이 나온 김에...
일단 지금 공안서 2곳이 습격을 당했고, 공안이 죽은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내가 봤을 때 이번 습격의 본질은 사 인민위원회 주석과 당위원회 비서에 있다고 본다.
다른 Xã들은 모르겠는데, 내가 머무는 곳은 혼인신고랑 출생신고 때문에 인민위원회를 방문해보니
인민위원회 건물과 Xã의 공안서가 바로 붙어 있었다.
일요일이라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습격 장소는 각 1개소 씩, 2곳이 전부인데 정치행정 간부들이 사망한다?
 
내 의심이 맞다는 전제 하에,
왜 간부를 습격했는가?
지금 닥락 내에서 오피셜로 거론되는 내용이 이것이다.
 

Huyện Cư Kuin: Cưỡng chế thu hồi đất và giải phóng mặt bằng thực hiện Dự án đường Hồ Chí Minh

UBND huyện Cư Kuin cho biết, huyện Cư Kuin sẽ tiến hành cưỡng chế thu hồi đất và giải phóng mặt bằng Dự án Đầu tư xây dựng đường Hồ Chí Minh đoạn tránh phía Đông TP. Buôn Ma Thuột (đoạn qua đị

baodaklak.vn

 
현재 BMT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호치민시까지, 동쪽으로 냐짱까지 고속도로를 뚫는 계획이 세워져있다.
그리고 BMT로 들어오는 요충지는 공항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현인 Cư Kuin현이다.
현재 시공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도로 계획에 포함된 지역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고 철거 등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Cưỡng chế công trình xây dựng trái phép ở Đắk Lắk cần phải thực hiện nghiêm minh

Để chấn chỉnh lại nạn xây dựng các công trình trái phép tràn lan trên địa bàn tỉnh trong thời gian qua, các ngành chức năng tỉnh Đắk Lắk đã mạnh tay lập lại kỷ cương rất được người dân đ

cand.com.vn

 
 
이렇게 '불법건축물'로 분류된 집들도 냅다 그냥 철거 중이다.
 
내가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모양.
이 지역에서 thời sự로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영상들에서는 전부 이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반국가단체의 미친 짓이라고 하기에는 맥락이 너무 없었는데 이걸 보고 있으면 맥락이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6월 14일 추가


위에 언급한 문제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이런 동영상이 돌고 있어서 가져와봤다.
에데족에겐 농사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토지를 행정력, 공권력 투입해서 강제로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보상은 쥐젖만큼이니.
그렇다고 거주 이전에 자유가 있기를 하니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길 하니.

들어보니 에데족은 그냥 농사에 집중하고 자기 삶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인데 행정력으로 이것저것 강제하고.
그것 때문에 뭐 신고하고 서류 만들고를 반복하지만... 그것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뒤로 돈을 줘야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불평불만이 꾸준히 쌓인 게 이렇게 터졌다고 생각하는 게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물론 이번 총격사건으로 전부 쏙 들어가겠지.
 


 

<원래 하려던 이야기 : 서부고원 소수민족의 투쟁사와 데가>

 
내가 이해관계자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라서
정보의 질이 좀 많이 떨어지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들은 것, 아는 것에 공부를 할 수 있는 한 해보았다.
요즘 육아에 정신이 없어가지고 어휴...
 

1. '에데'라는 민족(Người Ê Đê)

 
민족 고유의 말이라서 표기법이 Rade, Raday 등도 있지만 베트남에서도 그렇고 본인들도 Ê Đê라는 말을 쓰니, 이 용어를 기준으로 하겠다.
계통으로 보면 크메르 계통이지만 이들의 언어는 참족의 계통이다.
가까운 지역인 냐짱에서 이들의 언어 습관이 묻어나는 지명들이 있다고 하고,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포나가르 탑에 있는 비석에서도 이들의 언어 습관을 알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고 하더라.
 

2. 데가(Đêga)란

 
지금 언급되는 '데가(Đêga)'라는 말도 에데어에서 나온 말이다.
에데 말고도 에데족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꽤 있다.
베트남 내에서는 서부고원 일대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 민족들을 구분하지만, 이들은 거의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 내에서도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표현이 있다. Người Thượng이라는 표현이다.
여기서 Thượng은 한자어 上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이 표현은 이 민족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Đêga라는 표현이 그 중 하나이다.
이 단어는 에데의 말로 '산지, 고원, 높은 곳'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산(고원)의 자식들'로 여긴다.
프랑스어로는 이들을 Montagnard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도 '산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에데어 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사용이 된다.
이 '데가'라는 단어의 어원은 재밌게도 '인도'에 있다. 세계지리 시간에 한 번 쯤 들었을 법한, 인도의 '데칸 고원'에서 나온 말이다.
응? 갑자기 인도?
할 수 있겠지만, 에데의 전설에 따르면 이들의 시조격인 존재는 모두 인도에서 왔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참족들의 참파 왕국 역시도 인도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도 문화로부터 찾기 때문이다.
 

3. PMSI

 
점성이니 진랍이니 하는 중고시대 이야기들은 고이 접어두고, 바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으로 점프를 하겠다.
1946년에 현재 서부고원지대의 민족들은 인도차이나 연방정부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은 행정부를 수립한다.
사실 그 이전에도 반쯤은 민족들의 자치 지역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프랑스 전권대사로부터 공인을 받은 이 시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들의 독립투쟁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트남 전역에서는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이 끓어오르고, 각지에서 눈치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2차대전 동안 본토는 ㅈㄴ게 당했지만, 전쟁이 끝나니 인도차이나를 놓을 수 없었던 프랑스는 독립정부 수립 분위기를 깨기 위한 몇 가지 수를 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서부고원지대 민족들에게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당시 전권대사는 중부고원(현재 베트남에서 서부고원지대라고 부르는 곳)의 5개 성에 민족 자치행정부를 구성하게 하고, 인도차이나연방에 소속시켰다.
이 자치행정부를 프랑스어 약자를 따서 PSMI라고 부른다.
 
그러나 1949년 3월 8일에 중요한 협상이 이루어지는데...
 

4. Hoàng triều Cương thổ(皇朝疆土) 시대

 
응우옌 왕조의 허수아비 대표이자 수반인 바오다이 황제가 프랑스와 협상을 하여, '베트남국(Quốc gia Việt Nam)'을 공인받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서 고원지대 소수민족의 자치를 불허하는 칙령을 내린다.
이 칙령이 Dụ số 6(칙령 제6호), 황조강토라고 부르는 칙령이다.
중부의 고원지대와 북부의 고원지대(사파 등등) 소수민족들이 자치를 행하는 지역에서 '황제'의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며, 이 지역은 황제의 땅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프랑스와의 협약에 들어 있던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바오다이를 전면에 내세워서 지역 내에서 프랑스가 가진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맺은 밀약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 수립의 물결은 점차 거세지고, 프랑스는 혼쭐이 난 다음 인도차이나에서 발을 뺀다.
그렇게 세워진 남북의 정부.
남베트남은 1955년 이 지역에 내려진 황조강토의 칙령을 폐지하고 프랑스인과 바오다이 황제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해지한다.
 

5. 남베트남의 '경작지 개혁'

 
그러나 '산의 아이들'의 시련은 이제 시작이다.
남베트남은 1950년대부터 '경작지 개혁'을 진행하며 농업과 농촌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에는 기존 소수 민족들의 토지소유권을 법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게 '법률적으로 빈 곳'을 베트남의 절대 다수 민족 낑(Kinh) 족이 차지를 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토속어와 토속의 풍습, 그리고 토속민들의 토지 소유를 부정하는 내용이 명문화가 되었다.
 

6. 1958년 BAJARAKA 운동

 
이에 반발해 1958년 5월 1일에 소수민족들의 정부 정책 반대 운동이 일어난다.
이 운동은 여기에 참여한 민족들, Bahnar(바나), Jarai(자라이), Rade(라데, 에데), Kaho(카호)의 앞글자들을 따서 BAJARAKA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걸 어떤 사람이 '조직'이라고 하던데, 이건 단순히 'Movement'이다.
이 운동은 바로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탄압되었고, 응오 딘 지엠(Ngô Đình Diêm) 정부에 대한 쿠데타 이후인 1963년에 해당 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이 풀려난다.
 

7. 미국의 지원

 
잠깐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미국의 반공정책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1950년대 초, 미국은 고원지대 소수민족들에게 무장과 훈련을 지원해 '하노이'의 '공산주의자'들을 대적하는 전선을 펴려고 한다.
그렇게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이들에게 미국이 지속적으로 지원을 했다.
일단 이들이 개신교적 색채가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미국의 믿음이 있었던 것.
그러나 중부지방의 반공전선은 남베트남 정부의 병크로 인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은 '두 개의 베트남' 사이에 끼어서 제대로 된 스탠스를 취할 수 없었다.
 

8. 고원지대 해방전선(FLHP)의 결성

 
1963년 BAJARAKA 운동의 주도자들이 풀려난 후,
1964년 미국의 지원 하에 중부 지방의 다른 소수 민족인 참족들과 연합하여 '고원지대 해방전선'을 결성한다.
이 조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독립운동사를 배우면 항상 볼 수 있던 패턴, 온건파와 과격파의 대립이다.
고원지대 해방전선은 과격파가 득세를 했는지 소요사태와 남베트남의 토벌이 이어졌다.
이들은 근거지를 캄보디아로 옮긴 후 유격전을 전개한다.
 
이런 종류의 충돌이 항구적일 수는 없는 법.
결국 칼을 빼든 남베트남 정부의 대대적 공세에 조직이 무너질 상황.
여기에 남베트남 미국대사관이 중재를 해서 양측의 협상으로 좋게 마무리가 된다.
협상의 결과로 남베트남에서 활동하던 유격대와 지휘관들 모두 무사히 캄보디아로 철수한다.
 

9. 압제받는 민족들의 투쟁 통일 전선(FULRO)의 결성

 
1964년 9월 20일.
캄보디아에서는 캄보디아 국왕의 주도로 '압제받는 민족들의 투쟁 통일 전선' 결성 회의가 개최된다.
여기에 참여한 조직은 총 넷이다.
1. FLHR(고원지대 해방전선)
2. FLC(참파 해방전선)
3. FLKK(캄푸치아 크롬 해방전선)
4. FLKN(캄푸치아 북부 해방전선)
 
이 네 조직은 순서대로 FULRO Thượng, FULRO Chăm, FULRO Khmer Hạ, FULRO Khmer Thượng으로 불렸다.
이 조직은 베트남, 특히 남베트남과 대립하던 캄보디아의 주도 하에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국왕이 이를 통제하려고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캄보디아 국왕은 세력의 적절한 통제를 위해 FLC와 FLHR을 갈라치려는 등의 시도를 한다.
 
이에 FLHR 내에 있던 온건 세력은, 남베트남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여 1968년 꽤 괜찮은 내용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대략 FULRO을 하나의 운동으로써 권리를 인정해주고 '민족부'를 설치하여 Thượng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며, Thượng인들 거주 지역의 성은 성장과 부성장을 선거로 뽑는 등등의 내용이 담긴 협상안이 타결되자,
프놈펜에 거주하던 FULRO Thượng들은 남베트남으로 귀환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를 캄보디아 황군이 저지, 체포, 구금을 한다.
이때 체포된 이들은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프놈펜에 구금된다.
 

10. 반공 활동과 베트남 전쟁

 
Người Thượng의 역량이 성장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반공정책에 기인한다.
1968년 남베트남과 협상이 일단락 된 이후부터는 모든 역량이 북베트남 하노이 정부를 막고 반공활동을 하는 데 집중된다.
사실 남베트남과 종교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집단이기 때문에
민족적 구성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상호보완적인 구성이었던 셈.
 
하지만 모두 다 아는 역사적 사실대로 남베트남은 전쟁에서 북베트남에 점차 밀리고,
구정대공세 이후 가라앉는 분위기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1975년 미국이 철수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고원지대와 닌투언 일대 등에서 Người Thượng들은 북베트남 인민군과 지속적으로 유격전을 벌인다.
1975년 6월, 서부고원지대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 대부분의 죽고 2천 명 이상의 인원이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크메르 루주에 의탁하게 된다.
사이공이 함락되지만 베트남 내부에 남아 있던 Người Thượng 유격대 일부는 1979년까지 닥락성, 럼동성 일대에서 유격전을 치른다.
이들이 1979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와 북베트남 간의 충돌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그 사이에서 버틴 덕이었다.
 
캄보디아로 건너간 구성원들은 이후 크메르 루주 및 중국과 결탁해 안티베트남 활동을 이어간다.
 

11. FULRO의 종결

 
1992년 FULRO는 크메르 루주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한다.
이때 UN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로 들어오면서 캄보디아에 있는 FULRO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세계에 드러난다.
최종적으로 남아 있던 407명은 무장을 일체 반납하고, 대다수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택한다.
 
이걸 무슨 자료를 보고 쓴 건지, 어떤 사람은 최종 407명이 캄보디아 주둔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이 되었다고 하던데.
UN평화유지군에게 무기를 반납했다고 되어 있던데 참...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이들의 공식적인 활동은 무기 반납과 정치적 망명으로 마무리된다.
 

12. 미국에서의 활동

 
미국이 남베트남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할 때부터 Người Thượng들 일부는 미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FULRO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택한다.
이들은 주로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지에 거주지를 마련한다.
 
1990년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몽타냐르 재단(Montagnard Foundation, Inc. / Quỹ Người Thượng)'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설립한다.
이 재단은 "평화적 방법을 통해 고원지대 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보호"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진 비공식적 단체가 바로 '데가 중부고원 국가(Nhà nước Đêga)'이다.
'데가 중부고원 국가'의 구성원들은 FULRO 활동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이 주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평화적인 방법만을 택하지는 않는 것.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겪어서인지 정치적인 방향이 굉장히 국제화되고 진화를 했다.
이들은 '데가 교회 연합'을 구성해 베트남 내 종교위원회의 활동을 거부하고, '종교인들'을 파견해 베트남 내부에서 활동을 한다.
물론 바티칸에서 공인한 주교도 임명 거부를 때리고, 비판적인 신부를 냅다 정치범으로 잡아 가두는 베트남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들이 '신앙'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렇게 양지와 음지에서 동시에 활동을 하는 이들에 힘입어 2001년 2월의 소요사태, 2004년 4월의 소요사태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13. 통일 후 베트남 내부에서는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이념적인 활동이 아니다.
남베트남과 척을 지게 된 사건이 '경작지 개혁'에 있었듯이 경제적인 이권이 이들 대립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리고 통일 이후에도 이들은 정치적, 경제적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신경제지역건설"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진행한 개혁이지만, 기본적으로 북베트남에 대항했던 이들은 자신의 근거지로부터 유리시키기 위해 타지로 보내서 경제 건설에 이용하거나, 이들의 지역에 타지에서 이주민을 데려와 섞는 등 상당히 정치적인 면이 강한 시책이었다.
공산주의 개혁의 특성, 그리고 북베트남의 남부 지역에 대한 몰이해 덕분에 개혁은 진행하면 할수록 경제는 폭망해가고
베트남에서도 반동으로 취급되던 중부지역 소수민족들의 가난도 점차 심화된다.
 
베트남 정부에서 도이머이 정책(Chính sách Đổi mới)를 채택해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지만,
소수민족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거의 없고, 오히려 빈부격차만 심해지는 상황.
내부의 불만은 역사적, 민족문화적 맥락을 만나서 지속적으로 타오르고 있다.

반응형